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한다.
지금은 어디까지 왔는지 얘기한다.
3명의 스티미언을 지정한다.
태그는 #flightsimulation
(멀린(@mmerlin), 하늘(@flightsimulator)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는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제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곧 맞닥뜨릴 상황과 분리할 수 없는 화두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계기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쓸 글이었지만 그랬다면 단순한 근황 보고나 홍보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아 함께 갈무리합니다. 장문의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프롤로그 : 열일곱 살 소녀의 저주, 비비디바비디부
때는 19XX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세의 한 소녀는 학교에서 나눠 준 진로노트에 이렇게 적는다.
정신세계만큼이나 자유로운 글씨체. 프리랜서가 직업이냐.
아무튼, 이 소녀는 훗날 사범대학교 유아교육과에 입학, 어쿠스틱 기타 동아리에서 죽치고 앉아 기타 치고 노래 부르다 졸업 후 프리랜서의 대명사인 방송작가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짤방을 17세 배주희의 저주.jpg라고 부른다. 이런 비비디바비디부. 이럴 줄 알았으면 부자, 부자, 부자로 썼을 텐데. 오호통재라.
프리랜서 = 쓰는 사람 ?
나는 네 살에 한글을 깨쳐 읽고 쓰는 것을 비교적 이른 나이에 시작했다. 그렇다고 영재는 아니었다(고 엄마는 증언한다).
13세 꼬꼬마의 상습적 사색의 기록. (feat. 학급문집)
다크 소로우가 충만했던 중학교 시절에는 라디오를 들으며 시 노트 몇 권을 가득 채웠고, 잘나가는 연예기획사에 전화를 걸어 주소지와 담당자를 알아내어 빼곡히 써 내려간 가사집을 우편으로 보내곤 했다. (잘 지내니 SM)
고등학교 때는 고독과 고립의 차이에 대한 고찰을 적은 노트를 용기내 아빠에게 보여드렸다. 아빠는 읽고 나서도 한참을 가만히 계시다가
우리 딸, 참 심오한 글을 쓰는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다였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당황스러우셨으리라 생각한다. 부모님 앞에선 학교-학원-독서실-집만 왕복하는 모범생이라 그런 글을 쓰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셨을 테니.
국어, 문학, 작문 등의 과목을 특히 좋아해서 담당 선생님들의 눈에 띄어 백일장도 꽤 많이 나갔다. 신나서 쓰러 다녔지만 사실 자랑할만한 상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래도 쓰는 게 좋았고, 결국은 '쓰는 사람'이 될 거라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시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부모님도 '쓰는 일'은 '배고픈 일'이라며 (약간은 강압적으로) 만류했다.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업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좋은 대학에 가는 게 미덕인 시대, 그것이 의무인 환경에서 자랐던 것이다.
아무튼, 17세의 배주희는 이후의 인생은 상상도 못 하고 진로노트에 저렇게 해맑게 적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나는 프리랜서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 작가가 아니었을까. 그저 신문과 잡지를 통해 '자유기고가'라는 타이틀을 많이 봐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순수문학도, 음악도, 라디오도 사랑했던 해맑은 소녀는 20여 년(?) 동안 꿈의 궤도를 때론 가까이 때론 멀리 공전하다 결국 염원하던 '프리랜서(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꿈이라는 건 현재형의 직업이 아니라 원하는 삶의 형태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결국, 원했던 건 쓰는 삶이었다는 것을.
나는 요즘 글을 쓰고, 쓰는 공간을 만든다
꿈의 공전 궤도에서 가장 멀리 있었을 때 나를 힘들게 했던 건, 꿈을 이룰 시간을 팔아 월급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이었다. (그때는 밥벌이의 고단한 숭고함보다 자아실현이라는 원대한 알량함이 더 커 보였다.) 아무튼 그때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있다.
어디 산에 들어가서 글이나 쓰고 살고 싶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말에는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에 대한 두 가지의 조건이 들어있었다.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쓰며 사는 삶 말이다.
1년 반 전, 연고 하나 없는 제주도에 내려와 머물다 우연히(라고 설명하기엔 아주 많은 것들이 생략되었지만) '빌린 집'에는 빈 창고가 딸려 있었고, 나는 요즘 그중 하나를 글쓰기 작업실로 만들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곧 그토록 바라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 같다. (다시 한번 비비디바비디부)
혼란한 공사현장. 마치 요즘 내 정신상태를 보는 듯하다.
사실, 글은 집에서도, 방에서도 쓸 수 있다. 곳곳에 널려있는 카페에서도 쓸 수 있다. 창 너머 풍경이 바다요 오름이니 이렇게 영감을 듬뿍 주는 천혜의 환경이 어디 있을까. 그래 톡 까놓고 얘기하면 영감은 핑계고, 절실하다면 어디서든 써야 하는 게 쓰는 사람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돈이 남아도나? 웃프지만 그것도 아니다. 과거 과다한 시발비용 지출에 퇴사 후 회사 경영 악화로 퇴직금 지급 소송까지 가서 1년 동안 쪼개 받은 터라 모은 돈보다 빚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밥벌이를 위한 글을 쓰며, 그렇게 한푼 두푼 벌어가며 공간을 만들고 있다. 첫 삽을 뜬지 두 달이나 지났는데 다양한 요소에서 선택과 집중을 못 해서인지 모든 것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공간은 주인의 성향을 닮는다는데..) 요즘 나의 멘탈이 성치 않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애를 쓰며 공간을 만들고 있는 이유는, 꿈의 공전주기에서 가장 멀리 있었던 때의 나처럼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쓰며 살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쓰고자 하는 이에게 그런 공간이 얼마나 간절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내가 직접 그런 공간을 만들고, 그의 인생에 짧은 시간이나마 그런 공간의 맛을 느끼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삶의 형태'의 맛있는 한 조각을 선물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삶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쓰기를 망설이는 당신도 써야 한다고, 계속해서 써야 한다고, 당신은 그럴 수 있다고 응원하고 싶기 때문이다.
'취향이 같은' 쓰는 이들의 살롱 (aka 덕질공동체)
쓰는 이는 어디서 쓸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당연히 먼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을 쓸지 떠올리고 결정하는 데 있어서 '어디서'와 '무엇으로'는 종종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작업실을 글쓰기를 돕는 도구로 채우려 한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골라서.
작 가 의 물 건

1

2

3

4

5

6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그렇다. 나는 아주 느리고 어쩌면 불편한 도구들로 작업실을 채울 생각이다. 이것은 재촉하듯 깜박이는 커서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무시하는 모든 요소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나의 욕망이며, 염원이다. 그리고 쓰고자 하는 이가 그 공간에서의 시간을 아주 천천히 즐겼으면 하는 나의 수줍은 권유이다. 사진엔 없지만 글쓰기에 대한 책과 도구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커피와 음악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작업실에는 부디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쓰는 이들이 종종 들러주었으면 좋겠다.
내 자리(로 정해둔 곳)에서 보이는 풍경
몇 시간이고 마감에 쫓기지 않고, 사각사각 연필을 깎아 그리운 이의 이름 석 자를 써보거나, 오래된 타자기를 타닥타닥 서투르게 두드렸으면 좋겠다. 그러다 책을 읽기도 하고, 나와 잠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으면 좋겠다. 그러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다시 한참을 쓰다가, 문을 나서며 그 글을 내게 내밀었으면 좋겠다. 나는 글이 담긴 종이를 복사해 원본은 돌려주고 사본을 한 장 두 장 모아 두었다가 일정한 분량이 되면 책을 만들 것이다. 쓰고자 하는 이, 쓰는 이들의 책을.
책이 팔리면 작가들에게 원고료를 보내 줘야지. 그게 비행기 삯보다 훨씬 많은 돈이면 참 좋겠다. 또 쓰러 오라고.
에필로그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내 생각을 응원하면서도 내 밥벌이를 걱정한다. 가게 자리가 없어서 난리인 이 핫하고 힙한 제주 마을에 예쁜 구옥을 구해 놓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공사비 인테리어비, 본전은 뽑아야 하지 않겠냐고. 핫플 힙플 만들어서 돈 되는 장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당연하다. 나라고 궁리를 안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출입구와 가까운 한쪽 벽(?)을 스테이셔너리 코너로 만들 생각이다. 좋아하는 필감의 연필과 연필깎이를 팔고, 내가 좋아하는 지인의 그림으로 디자인된 노트를 팔 것이다. 종이를 눌러 둘 문진도 몇 개 놓고, 반듯한 밑줄을 그을 수 있도록 나무 자도 몇 개 두어야지. 그래도 벌이가 영 시원치 않으면 종잇값, 커피값이라도 받아야 하나. 스팀잇에 글을 조금 더 열심히 쓰면 되지 않을까. 오 나도 스팀페이로 결제 받아볼까. 글 쓰는 스티미언을 공략하는거야... 등등의 궁리를.
아 참, 작업실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내 자리를 제외하고는 두 세 명이 겨우 각자의 책상에 앉을 수 있다. 매일 만석인 곳이라고 소문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작업실의 이름은 '필기'로 정했다. 기는 기록할 기(記)한 글자지만, 필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도울 필(弼), 붓 필(筆), 반드시 필(必).
뭐라도 도울테니 여기 마련된 글쓰기 도구로 반드시 뭐든 쓰고 가라는 의미다.
종종 인스타그램에 내가 만들고 있는 공간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설명을 올리는데, 그 중 한 가지를 올리고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쓰는 행위,
쓰는 도구,
쓰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으로만
채워진 공간으로 만들 거예요.
아주 작고 느리고 불편하지만
분명한 목적을 가진 '쓰는 사람들'의 살롱이 되길.
그래,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더, 비비디바비디부.
너무 깊은 새벽이라 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
혹시라도 알림 설정해두신 분이 계실까 저어하여 그러니 이해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