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토요일 드디어 바이크가 내 손에 들어왔다.
면허와 부품 때문에 긴 시간을 기다렸다.
등록증을 손에 받고 도심을 벗어나 무조건 달렸다.
약간 힘들어 하는 엔진소리와 떨리는 진동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줬다.
야마하, 1995년산, 250cc, 레드, 바퀴짱, 23년 사용.
23년전 내가 오토바이에서 손 놓은 해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23년 만에 8시간을 점심도 안먹고 달렸다.
오래된 내 꿈 하나가 이루어진 순간이다 .
250cc 이상 오토바이 타는게 중학교 때 적은 꿈 가운데 하나였다.
이렇게 하나의 꿈을 이뤘다.
이제 하나 남았다...ㅋ
그래서 다시 정리중이다. 인생의 중반을 넘어 무엇을 하고 싶은지..
23년 전 아버지가 빚내서 사주신 첫 번째 오토바이, 125cc 대림 VF를 타면서 내 인생은 혁명적으로 크게 바뀌었다.
먼저 바가모요라는 작은 마을로 갈 생각으로 달렸는데 그만 지나쳤다. 마~ 까이꺼 달려보자 하고 탕가라는 곳으로 달렸다. 대략 330Km.
도로는 좋았고 풍경은 너무 맑고 이뻤다.
그동안 다레살렘을 벗어나질 못했는데 이참에 갈때가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걍 달렸다. 3달만에 처음이다.
23년전 몸으로 익힌 습관은 쉽게 안 없어진 듯하다. 당시의 내 세포는 다 바뀌었을 텐데 무엇이 남아서 이렇게 잘 탈 수 있게 하는지...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무엇있는가, 이런게 지랄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고맙기도 하다.
빠르게 달리진 못했다. 노장의 꼬장인지 나가야 말이지... 앞바퀴의 떨림으로 저녁엔 비누도 손으로 잡지 못했다. 지금도 약지 손가락은 타이핑이 잘 안 된다.
첫날 준비없이 11시쯤에 출발했기에 조금 무리가 있었다.
장갑도 없었고 그냥 얇은 바람막이만 걸쳤는데 살짝걷은 손에 햇살이 닿은 곳과 가린곳이 장갑을 낀듯 변했다. 이곳 사람들이 왜 손등은 까맣고 손바닥은 하얀지 공감 백퍼했다.
첫날 어두워져서 도심에 들어갔는데 헤드라이트가 안 들어왔다.
가로등 없는 도심에서 라이트 없이 오토바이 탄다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겨우 들어간 호텔은 물이 나오지 않았다...그래도 좋았다는...
다음날은 탕가에서 유명한 공원 플로다니로 아침 일찍 갔다.
종업원이 의자를 닦으며 준비 중이라 아무것도 안 된다며 생강차를 갖다 줬다.
거의 네시간 동안 짜파티 한 장과 과일을 먹으며 몸에 남아있는 진동을 바다를 바라보며 풀었다. 공원에서 한가하게 아이패드로 책을 읽는 내 모습에 이제 늙었나 하는 생각이었다. 뭔가 충분해 졌을까.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 꼭 가야 할 필요성을 적게 느꼈다. 그냥 이 도시에 와서 숨 쉬고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의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설렁설렁 주변을 돌아다녔다. 일요일이라 차도 별로 없고 한가했다. 잠깐 돌아보니 참 안정적인 도시라는 느낌이었다. 공원에서 만난 사람들도 그렇고 주변 풍경도 그렇고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그랬다.
다른 봉사단원의 소개 받은 루루호텔은 너무 좋았다.
일찍 들어가 한잔 마시며 하루를 충전했다.
다음날 월요일, 아침을 일찍 먹고 팡가니로 출발했다. 탕가를 한 바퀴 돌아서 팡가니가는 길로 나갔는데 도심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비포장 길이었다.
두어 시간은 그래도 탈만했는데 이후부터는 통통튀는 바퀴와 먼지에 정말 힘들었다. 어깨에 맨 가방은 무슨 80k 쌀한가마 지고 달리는것 같이 어깨를 짓눌렀다. 정말 보지도 않은 책 두권이 얼마나 원망스럽든지... 이유불문 짐은 가볍게.
월요일 목적지는 사아다니 국립공원이었다.
가는 길은 정말 오지로 들어가는 기분이었고, 한참을 달리다 보면 지나는 땅 색깔에 따라 기분도 묘해졌다. 집들은 벽돌집보다 흙벽에 풀잎?을 올린 초가삼간이 더 많았고 작고 낮았다.
어느 한 곳에 갔을 땐 집단 수용 농장같았다.
유일하게 두려움을 느낀 마을이었다. 사람이 그냥 마을만 보고도 이렇게 두려움을 느낄 수 있구나 하는... 흙 색깔도 검붉었고 그 오지에 수용소같이 똑같은 모양으로 지어놓은 집과 반대편의 흙집들.... 그냥 입구에서 부터 몸이 긴장했다.
아무도 없는 벌판보다 훨씬 두려움을 느낀곳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거기다 구글이 길을 잘못 안내해서 무슨 공장 입구까지 들어갔다가 웃음기 없고 번들거리는 검은얼굴의 경비원 안내로 다시 돌아 나와서 가던 길로 갔다. 영화 콜로니아가 생각난 이상한 마을이었다. 가는 길에 그렇게 많던 선인장 같은 이 풀은 밧줄을 만드는 데 사용된단다. 이 풀의 이름은 금방 잊었다.ㅜ
긴시간 털털거리며 도착한 공원에서 오토바이는 출입인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숨이 나왔다. 이 공원 안에 있는 롯지에서 하룻밤 묵고 반대편으로 통과할 생각이었는데 ... 이제 공원을 멀리 돌아가는 엄청난 길을 달려야 한다. 기름도 문제고 체력도 문제였다.
돌아가는 길은 앞에서 내린 비로 진창길이었다. 한 시간쯤 진창길을 달렸을까...미치는줄...내가 뭐하나 싶었다. 정말 행운의 여신이 도우사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백팩과 오토바이 온몸이 진흙으로 발랐다.
보통은 비가와도 도로에 군데 군데 물만 고여있는데 처음으로 진창길을 달렸다.
이렇게 고생고생 비포장길을 열시간 달려서 포장도로를 만날 수 있었고 이후 한 시간을 더 달려서 숙소에 들어갔다. 더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딱 11시간을 달리고 멈춰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한가한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이때 생각난 사람은 커피 마시는 노인!
화요일, 그냥 오던길로 돌아갔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지도보고 다른길로 가보자고 길을 바꿨다. 다레살람과 모로고로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A7...이차선이다.
가장 큰 실수였다. 엄청난 트럭들 속에서 그동안 못먹은 매연을 다먹으며 다르에 도착했다.
다르에서 키캄보니로 이어진 다리를 건넜다. 집에 다 온 듯하여 한숨 쉴 겸 해변으로 갔다.
무사히 돌아옴을 자축하고자 그늘에서 뜨거운 햇살과 파도를 바라보며 시원한 사파리맥주를 콸콸콸~~ 난 또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네시쯤 출발하여 집으로 가는 길은 그동안 다닌 모든 길중에 가장 안좋았다.
비포장 도로를 엄청난 무게의 트럭들이 다니다 보니 곳곳이 파이기도 했지만 트럭들이 미끄러지고 빠져서 세 곳이나 차량이 다닐 수 없었다. 평소에도 비가 조금만 많이 내려도 정말 난리가 나는 곳이다. 이주전엔 이 길에 트럭이 50대 이상이 줄줄이 머물러 있었다.
(사진은 이주전)
오르막에서 미끄러진 트럭을 피해서 지나가다가 넘어져 백미러를 잡아주는 홀더가 부서졌다. 오토바이에 깔렸는데 ㅎㅎ 처음엔 무거워서 시껍했다. 음주운전 하지 말아야겠다.
아랫배에 힘주고 겨우 빠져나와 다시 달렸다.
진창에 빠지기도 하고 모레에 휘청이기도 했지만 무사히 돌아왔다.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달리기만 했을 뿐 사진은 극히 적다.
사진으로 담지 못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했지만 그져 살아있고 달릴수 있어서 좋기만 했다.
그래도 내 방에 들어오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