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에 빠진 시기다.
우울한 시기라고 할 수도 있고,
바이오 리듬 상 바닥에 내려앉은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감기로 이틀을 누워있다 일어난 이후 기분이 그냥 그렇다.
글 쓸 생각도 안들고, 보팅 숙제만 포돗이 해왔다.
여러가지 불안감이 커지고, 무기력해졌다.
이거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팽배했다.
원래 가끔 이런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하고싶지 않은 건 안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지냈다.
그렇게 열흘 가까이 지났더니 조금 나아졌다.
만화를 많이 봤다.
일본 만화들 중에 '이세계물'이라고 하는 시간 때우기 좋은 장르를 많이 봤다.
이것 저것 보다보니 어떤 정형성도 보인다.
트럭에 치여 죽어서 넘어간다던지,
여러명 같이 넘어갔는데, 주인공은 별 능력이 없어서 버림받는다던지
하는 어떤 패턴이 쌓여간다.
그 외에도 '고블린'이라고 하는 약한 마물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좀 들고...
(뭔 죄를 지었기에 인간들은 보기만 하면 두동강 내려고 달려드는지...)
내가 꼽은 추천작은
(이세계물은 아니고 판타지지만) "도서관의 대마술사": 대작의 기운이 느껴진다. 단점은 아직 초반이라는 점.
(따뜻한 힐링이 되는 먹방) "이세계 주점 노부"
(이 작가 개그적으로 천재가 아닐까) "이세계 삼촌"
(이건 SF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닥터 스톤": 일상 생활의 과학을 잘 풀어내어서 좋음
(암울함 속에서 희망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의 고생담) "약속의 네버랜드"
...
슬럼프인데 만화 추천으로 끝나면 좀 그러니까 있어보이는 고상한 이야기로 마무리 해볼려고 한다.
아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과학 연구를 업으로 삼고있다. 과학 연구는 연구와 논문 쓰기라는 2단계 작업을 거쳐서 완성된다. 예를 들자면 연구는 시장에 가서 최적의 재료를 찾는 (사는) 행위라고 할 수 있고, 논문 쓰기는 사온 재료로 실제 먹을 음식을 만드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사람들은 눈 앞의 음식을 보고 요리한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데, 사실 많은 학생들이 과학자를 꿈꿀 때, 재료 찾는 줄만 알지 요리해야 하는 줄 모르고 과학자가 되길 꿈꾼다. 막상 과학자가 되었을 때, 요리하는 것 즉, 글 쓰는 것 또한 적성에 맞으면 다행이지만 글 쓰는 게 안맞으면 이제 고통의 시작이다.
나 역시 논문 쓰는 건 참 정이 안가서 힘들다. 지금 쓰고 있는 것도 벌써 시작한 지 3개월은 된 것 같은데, (물론 중간에 government shutdown 같은 사건들이 있긴 했지만) 아직도 끝이 안나서 하루 하루가 고역이다. 다음 자료 분석할 아이디어는 벌써 머리에 가득한데, 논문이 안써져서 모든게 밀리고 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건 요새들어 글이 조금 더 잘 써진다고 느껴진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니 1년 넘게 스티밋 생활하며 이것 저것 끄적이다보니 무언가 도움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꼭 논문 형식의 글이 아니어도, 심지어는 언어도 한국어 vs 영어로 다른데, 그동안 꾸준히 뭐라도 글을 쓴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신기하고 감사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논문 쓰기 싫은 건 아직 그대로 한글자 한글자 쓰다보면 언젠가는 다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 이번 논문만 어떻게 마무리 되면 한 6개월 정도는 재밌게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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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 또 눈이 온다고 한다. 한 10cm 정도 온다고 하는데, 아마 내일 애들 학교는 2시간 늦게 오라고 그러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덕분에 나도 껴서 늦잠 잘 예정이다 ^^v 이런 소소한 재미로 슬럼프에서 천천히 벗어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