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라리 멋있다가 좋았다. 어차피 예쁠 순 없으니 멋있고 싶었다.
이 시리즈를 기획하면서부터 정해져 있던 주제, 이 주제를 택하면 쓰게 될 게 뻔하고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공존했던 나의 내밀하고도 부끄러운 감정을 꺼내보려 한다. 그건 역시 나의 열등감에 관한 이야기다.
내겐 이상한 열등감이 있었다. 보통의 한국 여자 같지 않다는 열등감. 내가 특별하단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의미지. 어릴 적부터 오빠에게 은근슬쩍 세뇌를 받고 자랐다. '넌 못생겼어!' 정작 오빠는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빠는 귀신같이 나의 외모적 단점을 유머를 섞어 지적하곤 했다. 나의 높고 드넓게 벌어진 발을 보며 낙하산이라 놀렸고 치아교정 중인 내게 치과에 들인 돈으로 차라리 얼굴을 성형했으면 이빨 튀어나온 '구하라'가 될 수 있지 않았냐는 막말에 가까운 농담을 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그다지 모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우리 오빤 진짜 웃기다. 죽어라 싸우다가도 오빠가 유머를 던지면 늘 웃겨서 싸움이 끝나곤 했다.) 왜냐하면 어차피 난 어릴 적부터 못생긴 존재였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나의 외모를 바라보자면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예쁘거나 아름답다는 이유로 이득을 얻는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냥 주변에 있을 법한 외모, 사람에 따라서 취향에 따라서는 귀엽거나 예뻐 보일 수도 있는 그저 그런 외모다.
어렸을 적 아마 내가 크게 삐뚤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오빠의 사랑은 못 받았어도 작은 촌동네에서 친구와 이웃의 사랑은 많이 받았기 때문일 거다. 나는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나의 효능감을 외모로 찾으려하지는 않았다.그래서 내가 별로 예쁘지 않아도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뭐랄까. 어차피 예뻐질 수 없으니 손을 떼고 포기한 케이스라고 해야 할까.
물론 나도 내 외모 중에 좋아하는 부분과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나는 나의 손과 특히 손톱을 좋아한다. 단적으로 나는 키가 작은데 키가 컸으면 좀 더 편하고 내 성격에도 어울렸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저 아쉬운 정도이지. 그런 생각이 나의 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나는 완벽히 내 외모에 적응했고 부모님을 원망하지도 않고 무언가를 개선(?)할 의지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화장이나 옷, 액세서리, 쇼핑, 머리하기 등 나를 꾸미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빠가 말하는 예쁜 애들이란 비단 선천적으로 타고난 아름다움만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오빠는 잘 꾸밀 줄 아는 여자를 좋아했고 자기 여동생도 조금은 그런 면이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아니면 그러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크면서 나는 나의 포지션을 은연중에 이렇게 잡았다. '외모에 관심이 없고 털털하고 성격이 좋아 첫인상보다는 만나면 만날수록 괜찮고 매력적인 여자' 왜냐하면 별로 안 예쁜 내가 아무리 공들여봤자 예뻐지는 데 한계가 있었고 외모에 관심도 없고 꾸미는 건 역시 귀찮은 일이니깐 아예 선을 그어버렸다. 그리고 관심이 없어 하지 않게 되면 정말로 그쪽으로는 소질이 없어지더라.
나는 외모에 해탈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았나보다.
원래 내게 관심 없다는 남자에게 크게 미련을 갖지 않는데 차이고도 꽤 오랫동안 좋아한 남자애가 하나 있었다. 그 남자를 잊을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그중 하나는 그 남자가 나를 외모적으로 좋아해 주었기 때문이다.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나를 사귀는 남자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 후에도 그다지 많지 않다.) 정이 들어 예쁜 게 아니라 내 성격이 좋아 예쁜 게 아니라 그냥 보자마자 나를 예쁘게 봐준 그 남자에게 나는 절대적으로 설렐 수밖에 없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남자친구를 1년쯤 사귄 후 그의 친구를 만난 후 집에 가는 길이었다. 내 남자 친구는 아주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미적 감각에 예민했다. 그는 나의 외모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그는 나와 달리 꾸미는 걸 좋아하고 쇼핑도 아주 좋아했다. 그 남자를 만나면서 화장하는 법을 배우고 그 남자가 골라준 옷을 입기도 했다.(감사하다. 혼자 했으면 몇 년은 더 걸렸을 거다.)
-너 내 친구한테 고마워해야겠다.
-왜?
-너 예쁘대.
마치 의외라는 듯이 말하는 그의 말투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무심결에 하루 일과를 말하다 무심결에 친구들에게 여자 친구가 못생겼다고 말하고 사진을 보여주니 친구들이 '뭐야! 너 어떻게 여자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해. 예쁘신데.'라는 핀잔을 들었다며 내게 아무렇지 않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실은 상처를 받았었나 보다. 먼 훗날 1년도 넘은 시점에 말다툼이 있었고 '오빠는 나보고 못생겼다고 했잖아!'라고 공격하곤 울어버렸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 이외에 내게 할 말이 없었다.
뭐랄까. 외모에 관한 열등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나는 그 주제를 등한시 하면서 살았다. 그 열등감을 원래 없던 감정처럼 내게서 감춰두었다. 신경 쓰지 않는 척 화두로 올리려고 하진 않았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는 '못생겼다. 꾸미지 못한다.'라는 열등감이 늘 존재했던 걸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부자연스러운 선긋기는 여행을 통해 만난 한 언니에 의해 알게 되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서 '언니, 전 평범하지 못해요.'라고 말하자 그 언니는 의아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여느 다른 한국 여자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데 왜 그렇게 생각해?' 그 순간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내 말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연 설명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언니 말이 맞았다. 마치 어릴 적 세상 물정 모르는 오빠가 정해놓은 것처럼 환상 속의 기준에 내가 부합되지 못한다고 내 맘대로 정했던 일이다. 그저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0년을 알고 지낸 베프에게도 오래도록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나의 이 열등감을 고백했을 때도 반응이 비슷했다. 나는 그녀에게 못했던 말이 없는데 이것을 고백할 때는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M. 나는 너의 친구라는 게 부끄러웠어. 너는 예쁘고 잘 꾸미는데 나는 전혀 그런 타입이 아니잖아. 원래 예쁜 애들은 예쁜 애들끼리 놀아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네 친구가 나라는 게 부끄러울 때가 있었어. 웃기지? 나도 알아. 이게 이상한 생각인 걸. 그런데 나는 계속 이런 마음이 들었어.
물론 나의 베프는 전혀 내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 전혀 몰랐고 내 말이 이해도 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했다.
여전히 내게 외모가 그다지 중요한 관심사는 아니다. 화장도 안 하고 살고 있고 회사에 갈 때도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백팩을 메고 다닌다. 살이 쪄도 별로 신경도 안 쓴다. 나의 관심이나 취향을 바꿀 마음은 없다. 미용실도 잘 가지 않고 여전히 쇼핑을 좋아하진 않는다. 사람을 만나거나 특별한 날에는 화장을 하고 예뻐 보일 수 있는 옷을 입는다. 맘에 들거나 필요한 옷이 있으면 산다. 원하면 꾸밀 수 있고 그게 그렇게 특별한 일이라는 생각은 안 한다.
지금은 내가 특별히 유별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나도 평범한 한국인 여자애다.(단지 조금 꾸미는 데 관심이 없고 트렌드에 뒤쳐진 여자애일 뿐) 그런데 모르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면 여전히 신경이 쓰인다. 나의 이런 열등감이 혹여나 튀어나올까 싶어 조금이나마 예뻐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 글을 읽고 너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담담히 써내려간 마음 한 구석 숨겨졌던 열등감의 고백이다. 사실 나의 진짜 열등감은 따로 있다. 그것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해보겠다.
[안녕, 감정] 시리즈
01 입장 정리
02 감정을 드러내는 거리
03 평화의 날
04 다름에서 피어나는 감정
05 아플 때 드는 감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