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다가올수록 바람도 잦다. 가끔은 거센 바람도 분다.
밭에서 일하다가 아주 특별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웃 밭에서 썼던 비닐이 바람 따라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 이래저래 펄럭거리다 산 중턱에 턱 하니 걸쳐진다.
그러니까 지난해 썼던 비닐을 제대로 갈무리를 안 하고 밭에다가 방치해둔 걸 바람이 옮겨버린 것이다.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밭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밭에 남아있는 비닐이라도 날아가지 않게 잘 갈무리해달라고.
산 중턱에 걸린 비닐이 처음에는 내 눈에 많이 거슬렸다. 농업용 폐자재가 쓰레기가 되어 깨끗한 산을 흉물스럽게 만드니까.
근데 날마다 보니 그 맛이 있더라. 심지어 아침 운동하면서 가까이서 보니 그 모습이 아주 절묘하다. 외계인 같기도 하고, 춤추는 모습 같기도 하다. 어떤 때는 절규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날마다 바람 따라 모습이 달라지기도 한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눈살을 찌푸리기보다 예술이라고. 바람이 만든 설치 미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 바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라 하겠다.
어쩌면 바람은 이 작업을 통해 사람에게 경고를 보내는 지도 모르겠다. 뭐든 갈무리를 제때 잘 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정리정돈이든, 일이든, 사람 관계든....
바람은 안다. 순간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