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온 집 근처엔 커피가 정말정말 맛있는 카페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스스한 모습으로 카페에 갔는데, 고소한 빵 냄새가 났다.
매일같이 그 카페에 가면서도 주문 외의 말은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 냄새를 참지 못하고 무슨 빵인지 여쭈어보았다. 크로와상과 다른 빵이라고 말해주셨는데, 하나는 빵 이름이 어려워 크로와상 하나를 커피와 함께 시켰다.
봉투에 담자마자 뿌옇게 김이 서릴 정도로 따뜻한 빵이었다. 빈속에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집에 돌아와선 뜨거운 크로와상을 한입 베어 물었다. 최근 가장 행복했던 순간. 따뜻하고 바삭하고 촉촉한 크로와상. 차가운 커피...
크로와상을 와구와구 먹으면서, 카버의 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따뜻하고 바삭한 크로와상을 나눠 먹을 수 있으면 사람들의 슬픔이 반으로 줄어들 것 같다.
< The Bad Plus & Joshua Redman - As This Moment Slups Away >
최근엔 배드 플러스 트리오와 조슈아 레드맨이 함께한 앨범을 들었다. 나온 지 3년이나 됐던데, 며칠 전 처음 듣게 되었다. 첫 번째 트랙을 듣자마자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섹소폰 톤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피아노 연주가 그것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이 피아니스트 내가 엄청 좋아하는 사람인데... 솔로 앨범도 정말 많이 들었고, 가까운 지인은 이 사람의 워크샵도 다녀왔는데... 누구더라...
찾아보긴 귀찮아 하루종일 앨범을 들으며 누군지 계속 떠올랐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생각났다. 이단 아이버슨!
지인에게 워크샵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 지인은 이단 아이버슨이 한 엄청나게 멋진 말을 들려줬다. 그 말을 듣고선 깜짝 놀랐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눈을 감아봐도 떠오르지 않아 다음에 만나면 다시 물어봐야겠다.
이번 주엔 공연이 있어 바쁘다. 몇 개의 송년회 일정도 있다. '해 바뀌기 전에 보자'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점심을 먹고선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한다.
동생이 함께 일본에 가고 싶어 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계속 불발됐다. 이대로는 평생 못 가겠다는 생각에 최악의 일정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버렸다. 당장 스케줄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정확한 행선지도 모르지만, 기분은 좋다. 즐거운 연말이구나.
일본에서 돌아오는 날엔 '그분' 없는 '그분' 송년회가 있다. 송별회를 했던 그곳에서 모이기로 했다. 공항에서 그 먼 곳을 어떻게 가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차 있는 누군가와 동행하게 될 것 같은데, 그 누군가가 누가 될까...
< The Bad Plus & Joshua Redman - Beauty Has it Hard >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땐 1번 트랙을 계속 들었는데, 들을수록 2번 트랙이 더 좋다. 귀가 떨어질 것 같던 어제의 추위는 사라지고, 오늘은 적당한 겨울의 찬 공기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저 곡도 겨울을 닮은 것만 같다. 뒷부분 조용하게 반복되는 부분을 들으면서 이 곡이 내게는 캐럴이라는 생각을 했다.
눈 덮인 하얀 산을, 따뜻한 카페 안에서 차가운 커피를 홀짝이며 바라보는 상상을 했다. 내가 꿈꾸는 겨울의 모습.
피아노 앞에 앉아서는, 늘 그랬듯 해야 할 연습은 안 하고 딴짓만 하고 있다. 저 2번 트랙을 대강 더듬다가 보면대 위에 노트북을 놓고 글을 쓰고 있다. 오늘 연습은 망했군...
따뜻한 크로와상, 맛있는 커피, 겨울을 닮은 음악, 다정한 사람들, 다가올 새해. 모두 다 설레는 것들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