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요 몇 주는 패턴이라는 게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새벽 5시 30분에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떴을 땐 여러 감정이 들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회의감인 것도 같다)
그저께(엄밀히는 어제) 새벽 5시에 잠들었는데, 그러고도 어제 저녁 10시에 잘 수 있었다. 밤낮이 바뀌어 일찍 잘 수 없다는 어떤 이의 말이 맴돌면서, 그런 것과 상관없이 쉽게 잠드는 내가 잠깐 기특했다. 내 경우는 밤낮이 바뀌었다기보단 혼재하는 편에 더 가깝긴 했지만...
어제는 책을 읽다 잠들었다. 그래서인지 잠에서 깼을 때도 그 여운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몇 주째 붙들고 있는 1,500페이지가량의 긴 이야기다. 내용도 쉽지 않아 책장이 더욱 더디게 넘어갔는데, 인고의 시간을 지나 슬슬 끝이 보여 막판 스퍼트를 올리던 참이었다.
어제 읽던 책을 이어 읽다 허전한 기분이 들어 전날 듣던 Cozy Jazz Radio를 이어 들었다. 마침 Ben Webster가 연주한 Tenderly가 나오고 있었고, 이번엔 잊지 말고 머릿속 좋아하는 스탠다드 리스트에 텐덜리를 넣어야겠다고 중얼거리면서 Tenderly Radio를 찾아보았다.
내가 원하는 Tenderly Radio는 오로지 Tenderly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이었는데, 그런 플레이리스트는 없어 잠깐 Ben Webster의 연주를 반복해 들었다. 밖은 어둡고, 방안은 무서우리만큼 고요해 소리가 금방 퍼졌다. 가장 작게 음악을 틀어놓고 스피커를 귀 바로 옆에 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끝까지 겨우 50페이지 정도를 남겨두곤 Tenderly Radio를 직접 만들기 위해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았다. 더듬으면서 켠 스탠드 불빛이 생각보다 밝아 몸이 움츠러들었다.
일이 몰렸던 저저번 주에는 맥이 먹통이 돼 곤란을 겪었다. 어쩔 수 없이 요전 날 새로 맞춘 윈도우 PC로 모든 작업을 소화했다. 작업중에는 맥을 고칠 때까지만 잠깐 쓴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공장 초기화된 맥을 보니 영 낯설어 손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윈도우 PC를 주로 사용한다.
괜한 호기심에 윈도우엔 크롬 대신 다른 브라우저를 깔아두었다. 그래서인지 더 내 PC 같지 않다. 어쩌다 보니 주로 사용하던 맥은 스피커로 전락해 사파리로 겨우 음악만 틀어놓는 정도가 되었다. 사파리로 구글 뮤직에 들어가 Tenderly Radio를 만들다가, 어쩐지 낯설어 한 두어 곡 넣다 포기하고 결국 Ben Webster의 연주를 반복해 들었다.
글을 쓰겠다고 그 옆에 있는 PC로 낯선 브라우저를 켜 스팀잇에 들어왔지만, 로그인조차 되어있지 않아 여기저기를 뒤져 비밀번호를 찾아야 했다. 로그인을 마치고선 더듬더듬 비어있는 북마크에 스팀잇을 추가했다.
새로운 PC를 들이면서는, 또 몇 년 만에 맥을 초기화하게 되면서는 언제든 포맷할 수 있는 상태로 관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기본으로 설정돼있는 촌스러운 파란색 배경의 바탕화면을 보니, 쓸데는 없지만 귀여워 지우기 망설여지는 사진 하나 없이 작업물로만 가득 찬 바탕화면을 보니 점점 마음 붙일 곳이 줄어든다는 생각. 물론 나는 대개 바보 같은 생각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