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활동은 머리와 손만으로 하는 활동이 아니다. 사실상 글쓰기는 온몸으로 해야 한다. 무슨 말인가? 글쓰기는 삶의 활동의 일부로 녹아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글쓰기가 의무적으로 일상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글쓰기를 삶의 일부로 삼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생각보다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이 점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SNS)는 삶의 방식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모든 일상생활이 이른바 ‘인증샷’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목소리도 높다(인증샷을 찍다가 사망사고까지 갔다는 뉴스도 빈번하다). 자기 삶의 숨기고 싶은 지점에 대해서는 적당히 감추는 반면, 드러내고 자랑하고픈 점들 위주로 자신을 내보인다는 것이다. 일면 수긍이 가는 지적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런 행동을 나쁘다고만 볼 필요도 없다. 남에게 자신을 되도록 좋게 보이려 하는 건 누구에게나 거의 본능에 가까우니 말이다. 대면 관계를 통해 접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어차피 자기표현의 수단도 제한되기 마련이다. 선별되고 편집된 모습임을 어차피 알면서 보는 거라면, 표현된 것을 전부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것이 소셜미디어가 바꾸어놓은 삶의 모습니다.
여기에 글쓰기를 대입해 보자. 앞의 소셜미디어가 주로 ‘사진이나 영상’으로 인증한다는 특징을 지녔다면, 글쓰기는 ‘글’로 인증한다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글로 하는 인증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하는 인증에 비해 많은 노력과 솜씨가 필요하다.
먼저 ‘글감’을 찾으려는 노력이 깨어있는 내내 작동해야 한다. 나의 생각, 주변에서 일어난 일, 책에서 읽은 것, 인터넷으로 접한 정보, 만나는 사람들의 말 등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이 다 글감 후보이다. 이러다 보면 전보다 조금은 더 집중하고 관찰하는 삶으로 바뀌게 된다. 이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이런 자세는 과학자나 발명가, 또는 탐정이나 전문 작가와 같은 이들에게 발견되는 소중한 자산이다.
다음 단계로 선별과 편집이 있다. 우리는 아무거나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멋지고 놀랍고 흥미로운 것이 아니면 남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며, 좋은 반응도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글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글감을 다듬고 강세를 조절하게 마련이다. 자기 생각을 더 깊고 다채롭게 가꿔야 한다는 점도 느끼고, 남의 안목을 좀 더 이해해야 하겠다는 점도 깨달으며, 사람과 세상을 더 잘 알아야 한다는 각성도 생긴다. 내가 말하려는 생각과 남이 듣고 싶은 생각, 나아가 내가 들려주고픈 이야기와 남이 좋아하는 이야기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일도 벌어진다.
자신이 쓴 글을 남에게 제시하고 반응과 평가를 얻는 과정에서 전반적으로 ‘안목’이 길러진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앞으로의 사회에서도 안목은 굉장히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자신의 좋은 생각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지만, 가치 있고 좋은 것을 알아보는 안목은 더 중요한 능력이다. 알아보는 안목이 없으면 자기 생각을 평가하는 능력도 없다고 여겨야 하리라. 안목 없이는 좋은 글과 말이 나오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대의 인재란 좋은 안목을 갖춘 사람이다. 내가 사람을 뽑는 입장이라면, 일단 그 사람의 안목부터 볼 것이다.
스티미언의 삶이 왜 가치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상 @armdown ('아름다운') 철학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