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역사 얘길 써보겠다. 우리에겐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피를 흘렸던 20세기 역사가 있다. 한반도는 20세기 시작과 거의 동시에 주권을 빼앗겨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노예와 같은 예속생활을 견뎌내다 도둑처럼 해방이 찾아왔다. 우리의 힘으로 얻어낸 것이 아닌지라, 어찌하다보니 외세에 의해 한반도가 두동강 났다. 분단 이후 대한민국은 독재자들 세상이었다. 그러다 우리 힘으로 민주화를 이뤄냈다. 독립, 자주, 민주에 대한 열망과 실현으로 표현될 20세기를 살아냈다. 아주 거칠게 요약한 20세기 대한민국 역사다.
아직도 국민이 신민처럼 여겨지며 위로부터의 다스림과 복종이 일상인 일본과는 격이 다른 역사인 것이다. 이토록 위대한 20세기이나, 이젠 그 위대함을 던져버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분명 국가는 소중하고, 국민은 위대하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것들이 갑갑하게 느껴진다.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국민이 국가를 생각하는 방식의 문제다.
대한민국은 그럭저럭 안정된 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도덕성에 결함 있는 정부가 두차례 이어졌다. 그들을 끝장낸 것이 촛불혁명이었다. 촛불의 힘에 당선된 현정부는 분명 지난번과 지지난번 정권보다 도덕적인 정부임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들 또한 인간이기에 결코 완벽하진 않을 테다.
하지만 이들은 완벽함을 확신하는 듯하다. 그래서 수렁에 빠졌다. 신이나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힘이 아닌 이상, 그들의 권리는 제한적이다 도덕성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 되진 않는다. 자칫하면 당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무오류를 주장하는 북쪽과 다를 바 없어진다.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에 자기들은 틀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착각은 위험하다. 정당성과 정통성을 지녔다고 국민을 백성처럼 대하며 주무를 권리는 없다.
정부는 암호화폐가 국민을 속여 도탄에 빠트리는 사악한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 폐쇄론을 주장했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는가? 대중인민은 무지몽매 하므로 계몽해야 한다는 20세기의 사고관이나 더 이전의 봉건시대의 관념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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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평창올림픽 단일팀 구성과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를 밀어붙이려 했다. 국민을 가르치려 들며 순응을 명령했던 것이다. 이게 틀렸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20세기의 질곡과 가난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아직도 그런 식으로 국민을 대할 이유가 없다. 20세기에 이루고자 했던 국가는 유효기간이 끝났을 테다. 국가의 역할은 유효하겠지만, 과거와 같은 것은 아니다. 보건과 복지, 행정, 치안유지에 힘쓰며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서비스 국가가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권력은 필요한 때에 최소한으로 행사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마저도 철지난 생각일 수 있다.
21세기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인 지금에서 현재와 다른 국가의 역할을 상상하는 게 무리는 아닐 테다. 탈중앙, 탈정치, 탈권위가 해답일 수 있다. 블록체인과 함께 국가의 역할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또 가능한 일 아닐까. 이제 국가가 우리를 대하는 방식이 변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는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 어떤 형태이든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
나는 정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세상이 쭉 이어진다는 건 아무래도 갑갑하다. 지금과 다른 정치, 경제 체제를 상상하는 건 그 자체로 즐겁다. 달라질 세상을 기대하고 꿈꾸다 보면 현실은 그것과 닮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