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쓸 때는 조심스럽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고 싶지도 않고, 나는 많은 고래들로부터 골고루 보팅을 받아봤기에 그들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으로 편을 나누고 싶지는 않다. (엄마 아빠 제발 싸우지 마...ㅠㅠ 라는 아이같은 심정이 된다.)
듣고 보면 모두 각자 일리가 있는 말이고 모두의 사정이 다 이해가 된다. 하지만 갈등이 심화되어 모양새가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하면 결국 사람인지라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누가 더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말하는지를 파악하고는 먼저 실수하는 사람에게서 조금은 거리가 생기게 된다.
스파에 관계없이 1인당 같은 수의 투표권을 주는 스팀이 내세우는 기본 원칙은 민주주의다. 결국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사람이 승리한다. 때문에 아니라고 해도 선동과 언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보는 사람들은 여전히 선동이든 언플이든 관계없이 그나마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집단이 누구를 얼마나 지지하는지는 파워가 아닌 각자가 지닌 한 표들의 합으로 결론이 나게 될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 하루 숨쉰 일과 인사 발령난 일은 다른 일이다. 그것도 매우 다르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왜 이야기를 좋아할까? 그것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아닌 남이 되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위는 스스로를 객관화 시킨다. 그렇게 스토리를 즐기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자기 삶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대리체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남이 체험한 것을 우리의 일처럼 느끼게 된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면 내가 딴 게 아니라도 마치 내가, 혹은 우리 가족이 딴 것마냥 즐겁고, 세월호 참사 때는 내 가족이 죽은 것이 아님에도 마치 내 가족이 죽은 것처럼 온 국민이 슬퍼했다. 우리는 언제나 남의 인생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도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동질감을 얻으며 같은 사회인으로 뭉쳐질 수 있다.
숨 쉰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숨을 쉬며 그것에 대해 특별하다고 느낄 사람은 없다. 물론 숨을 쉬다 숨이 막혀서 병원에 실려간 이야기라면 다르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안타까워 하며 그가 죽지 않았음에 안도하고 수 그의 건강을 빌어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직장에서 오랜 기간 스트레스 받으며 꾹꾹 참아 왔고, 그 전날에도 인사발령이 어떻게 날지에 대해 불안감을 호소하였을 때,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며 그가 잘 풀리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인사 발령이 났을 때 그 소식은 그의 사정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큰 희망과 안도를 주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우리는 그를 우리의 일부로 느꼈으며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는 동질감을 얻었던 것이다. 그 글의 길이나 정성과는 관계 없이 그 소식 만으로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숨쉰 이야기와 인사 발령난 이야기의 차이가 아직도 모르겠다는 분이 계신다면 아마도 내가 글을 잘못 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상으로 여기에 대해 더 적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지금도 이 글 때문에 내 등이 터지는게 아닌가 싶은 두려움이 조금은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전에도 말했듯, 스팀이 진짜 전성기가 되면, 지금의 고래들은 이미 글을 쓰거나 큐레이션 할 필요도 없는 세계적 갑부라서 그림자 정부처럼 정체조차 알기 힘들 것이고, 코인이니 보상이니 보팅이니 하는 이야기들 역시 그 옛날 전설처럼 전해지는 부질없는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일상의 일기, 사소한 말장난, 퍼온 웃긴 사진들, 의미없는 내용들.. 그런게 한가득 펼쳐지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오면 스티브 잡스와 빌게이츠가 그랬듯, 혹은 메탈리카와 메가데스가 그랬듯, 그 옛날 별 시덥잖은 이야기들로 서로 감정 상했던 과거에 대해 그저 그땐 그랬지 하면서 쓱 웃고 치울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