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아이어의 '여행하지 않을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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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매일 생각한다
출근안하고 살 수는 없나.....
ㅋ_ㅋ
놀러다녀야만 행복한 줄아는 병에 걸려
빚이 많은고로 일을 안할수는 없으므로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나는 이 자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만으로 몹시 끌렸다ㅋㅋㅋ
제목만 보고도 얼마나 싸돌아다닌 사람이 쓴 글인지.............딱 느낌이 왔다
뭔가 이건 정말이지 저격
말라위에서 나의 고민 중 큰 부분을 차지했던 이 문제, 공허를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니는 것. 결론은 명상이었는데..명상마저도 미얀마 어디에 가서 해야하나?하면서 원점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미친 습관
좋은 글이었다.
여행이 답이 아니라는 건 이미 증명되었다.
약처럼 내성만 커지고
말라위를 떠나서 이런저런 다짐을 만들고 달라질 수 있어~한게 무색한 삶을 살던 가운데
선물같은 책을 만났다. 뒷통수를 맞았다. 아멘
8할이 인용이지만 공유하고싶어 남긴다.
"사색하는 삶의 기이한 법칙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그저 앉아서 고민해봤자 문제의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만히 내버려두면 언젠가 저절로 해결된다. 혹은 언젠가 삶이 당신을 대신해 그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나는 휴가조차 여행 동선과 시간을 짜고 기차표를 처리하면서, 업무를 처리하듯 완벽을 기하고 온갖 잔재주를 부릴 기회로 삼았기 때문이다.
휴가를 보낸 시간의 양에는 관심을 기울였지만 시간의 질에는 소홀했다. 나는 비행기로 이동하는 시간을 일과 관련한 독서를 하거나, 극장에 걸려 있을 때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던 영화를 보거나, 일할 때처럼 미친듯이 나 자신을 준비하고 계획을 세울 기회로 삼았다. 리카르가 비행을 하늘에서 보내는 작은 안식일로 여길 수 있다고 했을 때, 나는 그런 일은 30년 동안 히말라야 산중에서 수행을 한 승려나 할 수 있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리라 여겼다.
안식일은 공간이 아닌 시간에 세운 대성당이다.
우리에게 가장 감동을 주는 장소는 한동안 만나지 않은 친구를 금세 알아보듯 종종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마치 이미 아는 곳으로 돌아가듯이 익숙한 감정에 휩싸여 다가간다.
스트레스는 전염된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이동과 연결과 공간의 시대가 되었지만, 정작 우리의 일상은 시간에 잡아먹혀버렸다.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릴수록 나 자신과 소통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실리콘밸리에는 매주 '온라인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 안식일을 맞아 균형감각과 방향감각을 되찾으려고 금요일 밤에 거의 모든 전자기기를 껐다가 월요일에 다시 온라인 상태로 돌아간다.
교토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무턱대고 아무거나 하지 마. 가만히 좀 앉아 있어."
거기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꽤 해방감이 느껴진답니다. 게다가 달리 갈 곳도 없죠. 그래서 그냥 앉아서 구름과 푸른 하늘을 봅니다. 모든 게 정지해 있고 또 모든게 움직이고 있죠. 아름다워요.
이 세상에서 태어나 행복을 손에 넣어리라 기대하는 것은 불구덩이에 뛰어들면서 화상을 입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는 이야갸..
그러나 어느 순간, 세상을 아무리 수평으로 여행하고 다녀봐도, 도전의식을 자극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곳을 수직으로 깊이 파고들고 싶은 욕구는 채워지지 않았다. '정'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동'이야말로 가장 풍성한 감각을 이끌어낸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다.
자신의 바깥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이슬람의 우화에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인물과 똑 닮았다. 우화 속 남자는 자신의 집에서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거리가 더 환하다며 거리로 나가 열쇠를 찾으러 다닌다.
사방을 종종거고 다니며 만족을 찾는 것 자체가, 내가 절대안정이나 만족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 같았다. 세계 평화를 논한다면서 말끝마다 논란과 분열을 불러일으킬 만한 표현을 사용하는 누군가가 자꾸 내 모습과 겹쳐 보인 것이다.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찾아 또다시 떠나고 싶어지면
나는 다른 어디도 아닌 뒷마당을 돌아볼 거예요.
그곳에 없다면 애초에 잃어버린 적도 없을테니까요; 오즈의 마법사
아무데도 가지 않기는 금욕이라기보다 자신의 감각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