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을 시작한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느낀 바가 많아 생각보다 후기를 빨리 쓴다.
스팀잇이 세상을 바꿀 가능성
나는 왜 스팀잇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가. 가상 화폐가 투기의 장으로 비판 받고 있던 때에 스팀잇에 관한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콘텐츠 창작자에게 블록 체인으로 보상하는 플랫폼이 있다는 글이었다.
그 글은 콘텐츠 창작자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구조를 은근히 비판하며, 스팀잇의 혁신을 소개했다. 스팀잇은 저자가 쓴 글에 공감하는 독자들은 투표를 하고, 투표를 받은 저자는 그만큼의 가상 화폐를 버는 플랫폼이라고 그 글은 논리적으로 주장했다. 나는 그 주장에 묘하게 흡입되었고, 스팀잇의 세계에 들어갔다.
노동과 투기의 모순
나는 과거의 금융 자본주의 시스템보다 노동 중심성이 있기를 스팀잇에 기대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과거의 창작 플랫폼보다 노동 중심성이 월등히 높다. 쉽게 말해, 노동 착취가 훨씬 적다.
고전 경제학의 양극에 있는 아담스미스와 칼 맑스 둘 다 가치가 노동력에서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는 사람이 부를 축적하는 사례가 적은 것은 왜 일까? 나는 칼 맑스가 논증한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 황금알을 낳는 것이 아니라면, 돈이 돈을 버는 구조는 돈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시스템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으려면, 돈이 돈을 버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즉, 투기는 노동 중심성의 반대편에 있다.
노동이 있는 화폐와 노동이 없는 화폐
과거 금융 자본주의에서 화폐는 노동과 무관하게 발행되었다. 중앙 은행에서 돈을 얼마나 찍느냐에 따라서, 그들이 시장에 돈을 얼마나 푸느냐에 따라서, 은행들이 대출을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서 물가가 좌우되고 거품의 두께가 결정됐다. 그리고 노동력의 가치는 임금 계약서에 따라서 가치 생산 이전에 결정되었다.
나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1,2 세대 가상 화폐들이 노동과 무관하게 채굴된다는 점에서 커다란 혁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분산 채굴/저장 시스템이 권력을 분배할 거라고 누군가 주장했지만, 중앙 은행이 갖고 있던 권력을 거대한 체굴업자들이 갖고, 은행이나 주식/채권 거래소의 권력을 거래소가 갖는 것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스팀잇은 달랐다. 스팀잇의 채굴이란 저자의 글과 그 글에 투표하는 사람들의 참여로 발생한다. 즉, 노동을 통한 가치 생산과 그 가치의 사회적 평가가 화폐 발행과 가치 분배의 기준이다. 쉽게 말해, 가치 있는 일을 한 사람(저자)에게 일을 한 만큼 보상하는 체계이다. 화폐 발행부터 분배까지 노동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 내가 스팀잇을 혁신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부분이다.
스팀잇의 한계
그러나 스팀잇을 사용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돈으로 스팀 파워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스팀 파워는 스팀잇에서의 레벨을 말하는데, 스팀 파워가 높은 사람일수록 직접 쓴 글과 보팅을 한 글의 가치가 높아진다. 자신이 노력해서 스팀 파워가 높아지는 시스템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와 상관 없이 스팀잇 외부에서 번 돈으로 스팀 파워를 살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돈 있는 사람의 영향력이 커질 위험이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스팀 파워에 따른 영향력 차이가 현저히 크다는 것이다. 스팀 파워가 낮은 뉴비들의 투표는 아주 미비하게 반영된다. (내 글에는 뉴비들이 네 표를 줬는데 0.01$가 오른 글이 있고 스팀 파워가 높은 유저가 한 표를 줬는데 2$가 오른 글이 있다.) 이는 글의 가치를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돈으로 보팅을 거래하는 것을 막는 방지책도 필요해 보인다. 돈을 보내주면 당신의 글에 보팅해 주겠다는 심심찮게 보이는데, 이는 스팀잇의 취지와는 거리가 먼 풍토로 생각된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스팀잇은 기존 플랫폼보다 창작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 플랫폼으로 보인다. 아직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만큼 한계를 극복해 창작 노동자들에게 더 큰 희망을 안겨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