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베이스를 처음 잡고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재즈 클럽에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내게 대단한 재능이 있었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그럴 정도로 서울의 재즈씬이란 빈약하기가 이루 말할데 없었다는 얘기다. 1990년대 말이니 고작 이십 년 전이다. 실내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게 일상이던 시절이다. 앞에서 연주를 하건 말건 마음껏 취해 떠드는 게 흔한 광경이었다. 휘적휘적 무대 위로 올라와 한 곡조 뽑아보시겠다고 들이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실제로 종종 겪는 일이었다).
대학로에 있던 천년동안도라는 재즈 클럽에 처음 연주하러 갔던 날이었다. 천년동안도에서 연주한다니, 하며 흥분하고 있던 나에게 매니저는 손님중의 한 분이 같이 연주를 좀 하고 싶어하신다며 난처한 목소리로 부탁을 했다. 이내 모 대학의 국악과 교수라는 양반이 만취해서는 피리로 잼을 하겠다고 무대로 올라와 행패를 부렸다. 더블베이스를 내려놓고 노려보는 나에게는 '어이 넉 줄! 연주해!' 하고 소리를 쳤고, 보컬리스트에게는 뚱뗑이 어쩌고 했었다(그녀는 몇 년이 지나 BMK가 되었다). 똑같이 취한 그의 일행은 무대위로 올라와 피아니스트에게 명함을 건네며 나 이런 사람이라고, 저 사람 XX대 교수라고 중얼거렸다. 알고보니 한참 전부터 매니저에게 연주를 시켜달라고 졸라댄 모양이었다.
미국이라면 다를텐데, 그들이라면 이 음악을 이해하고 제대로 감상해줄텐데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빌 에반스 트리오가 연주하는 1961년의 빌리지 뱅가드에서도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있었다. 빌 에반스인데, I Loves You Porgy인데. 숨쉬기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여러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