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앞에는 늘 리어카 한가득 불법복제된 카세트 테이프를 파는 노점상 아저씨가 있었다. 당시 유행하는 가요며 팝송들을 마구잡이로 녹음한 것들이었다. 빽판은 이 테이프들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아마도 6학년 때, 호기심에 과자 사먹을 돈을 아껴 테이프 하나를 집어들었다. 가격은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천 원 정도였을 것이다. 짜장면이 육백 원 하던 시절, 1980년대 중반.
집에는 딱히 들을만한 게 없었다. 그 나이에 음악에 푹 빠진 애들은 보통 아버지가 대단한 음악 애호가이거나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형이 음반을 사모으는 경우였다. 하지만 내 아버지는 음악에 아무런 취미가 없었고, 형은 틈만 나면 눈이 빨개지도록 오락실에 다녔다. 그러니 학교에 다녀와서는 마루바닥에 배를 깔고 눈앞에 만화책을 펼치고 라디오를 듣는게 내 일상이었다. FM 라디오방송이 시들하게 느껴지면 그 테이프를 돌렸다.
아마 열 몇 곡이 들어 있었을텐데, 딱 두 곡이 명확하게 기억난다. 하나는 Starship의 We Built This City. 당시 제법 여러 나라에서 히트한 싱글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Rolling Stone이며 GQ 등에서 최악의 곡 리스트를 선정하면 꼭 들어가는 곡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곡, No Woman No Cry.
유튜브 세상이 되고난 다음 어느 한밤중에 이 라이브 영상을 보았다. 이미 재즈 연주자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지독히 기술적으로 치닫는 요즘 재즈의 건조함에 진력이 나던 중이었다 - 물론 현대의 재즈라고 다 감정적으로 메말라버린 건 아니겠지만. 그런데 밥 말리의 노래는 그 반대편 극단에 서 있었다. 기꺼이 단순함과 거칠음을 선택한 노래, 심장을 쥐어짜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래.

유튜브는 잊고 있던 Boney M의 버전도 알려주네요. 제가 밥 말리의 원곡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명곡을 이따위로 망쳐버리다니!' 하는 감정이 스물스물 올라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기분좋게 들었습니다.
Boney M - No Woman No Cry
그리고 본문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지극히 80년대스런 노래, We Built This City입니다. 가사 첫머리가 We built this city, We built this city of rock and roll이라니 롹 음악에 큰 애정이 없는 저로서도 손발이 약간 오그라드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이제와서 들으니 옛날 생각도 나고 시원시원한 느낌이 있어 좋네요. 나이가 들면서 촌스럽게만 들리던 80년대의 음악에 조금씩 관대해지는 것 같습니다. 마치 패션계에 30년이 지난 유행이 돌아오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데, 과연 어깨에 거대한 뽕 들어간 자켓도 살아돌아오는 날이 올까요?
Starship - We Built This C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