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부슬부슬 비가 오고 어둡고...
여름인지 가을인지 알 수 없는 길을 걸어 갔다.
아파트 사이 마법의 길로 갈까 하다가 어두워서 그냥 큰길로 올라갔지.
문을 열고 우산을 빨래 널듯이 펴 놓고 뒤돌아 보니..
벤치 위에 과일 박스 하나가 떡하니 올려져있다.
응시하다 유리문이 어른거려 올려보니
꼬맹이가 속옷만 입고 몸털기 춤을 추고 촐싹거린다.
일찍 온 나를 반기는 세러머니다.
"야.. 얘 뭐야~"
"너 왜 이래? 너 자꾸 이러면 나 중독돼~"
신나하며 춤 추는 꼬맹이를 비껴 박스를 들고 열었다.
탐스러운 복싱아가 치장을 하고 옹기종기 모여있다.
하나를 들어 치장을 벗기자 위풍당당한 모습을 들어냈다.
탐스러운 복싱아~
신선들만 먹었을 것 같은 토실하고 금빛 윤이 좌르르한 "황도"다.
아이~ 좋아라~~ ~
나에게 또 우렁각시가 선물을 보낸거다.
작년에도 올해도 뜬금없이 나에게 선물을 보내는 그녀!
그녀는 전생에 내 언니나 이모쯤 되었을꺼다.
전에는 감자를, 명란젓을, 차를, 영양제를.. 선물해줬다.
또 있는데 생각이 가물가물..
결정적으로 얼굴을 볼때마다 커피를 갈아 내려준다~ "꺄악!!"
나의 우렁각시는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울 꼬맹이를, 울 시엄니를, 울 동생을, 울 언니를 이뻐라하고 갖가지 방법으로 신경써주고 선물을 준다. 어쩜이러는지..
나도 이런 우렁각시가 너무 이뿌고 감사해서 울 가족들에게도 이리 말을 한다.
"아무래도 전생에 가족이었나봐. 이렇게 날 챙겨주는 걸보니.."
울 가족들도 어쩜 그런 사람이 있냐며 모두 감사한다.
나보고 잘 하라는 말을 빼놓치 않으면서 말이다..
"내가 줘도 부족한디 자꾸 받아서 어쩌지? "
"당연한걸 하는데 이리 자꾸 선물을 받아서 어쩌지?"
"아무래도 이번엔 나도 한껏 기분을 좋게 해줄 아이템을 찾아봐야 겠다. "
"정말 내 스타일로 선물을 해줘야겠다. 호호호"
선물할 생각만 해도 기분이 들뜬다.
나도 우렁각시가 되야지!
그건 그렇고, 일단 먹고 보는거야.
치장을 벗긴 복숭아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기고 멋지게 조각내서 꼬맹이 앞에 놓고 반씩 먹는거야~. 우린 공정하다. 누구한테 더 주는 것 없다. ㅎㅎ
그런데 내가 한눈 판 사이 꼬맹이가 한조각 더 먹는다.
내가 기분 좋아 봐준다. 우하하... 난 대인배야~
우렁각시님~ 최고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