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어제 메일로 문의한 사항에 대해서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이 이해한 바대로 알려주고 이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자신이 이해한 부분에 대해 확신이 없으면, 한번쯤 상대방에게 확인을 하는 편이 좋다. 따라서 좋은 자세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자신이 이해한 바를 말하면서 평가가 덧붙여졌고, 이 평가는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물음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자신의 틀 이외에 다른 틀을 생각해보지 못했거나, 지레짐작으로 인해 발생한 오해로부터 나온 것으로 보였다. 약 3분 정도의 자신의 이해한 바 + 자신의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고 나서, 나에게 자신이 이해한 바가 맞는지 물어보았는데, 나로서는 어디서부터 이해를 시켜야할 지 갑갑해졌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대화의 목적은, 상대방이 틀렸고 내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어제 질문을 했을 뿐이며, 질문을 한 것에 대한 대답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상대방이 하고 있는 오해에 관해서, 그 오해가 지금의 전화 통화 시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없는 것이라면 그냥 가만히 놓아두었다. 서로의 이해에 닿기 위해서는 사실 찬찬하고 진중한 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상황과 시간이 허락해주지 않는 때가 있다. 이번 통화의 경우에는 상대방이 그랬다. 상대방이 처해있는, 급박하고 일이 밀려있는 상황에 대해서, 나로 인해 상대방의 소중한 자원이 소모되지 않기를 바랐다. 여기서의 최선의 방법은, 상대방이 말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두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는다면, 아마도 통화는 예상 시간의 서너배는 훌쩍 넘을 것으로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시간을 들여서 내가 맞고 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들, 상대방의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 의외로 사람은 감정과 기분에 지배되는 동물인지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강인한 논리도 별 상관이 없을 때가 있다.
그래서 대화는 비교적 짧게 마무리되었다. 몇가지 단점이 상대방으로부터 지적되었고 조언을 들었다. (물론 그 단점들은 상대방이 나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틀린 것이었지만.) 나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으므로, 굳이 대화 상에서 상대방이 틀렸음을 지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대화/문의/소통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에 대해 설명하는 장문의 메일을 쓰고 보냈다. 아마도 이 메일을 받게 되면, 본인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자신이 이해한 대로 말한 것이 사실은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메일에서, 당신이 처한 바쁜 상황을 알고 있고 소통이나 이해에 있어서도 쉽지 않았을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마도 이 메일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고 싶은 대로 가만히 두어야하는 상황이 있다. 나는 이것도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피드백을 바로바로 주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가끔은 피드백이 도움이 되지 않거나 되더라도 시간을 두고 진행해야하는 것들이 있다. 상대방의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충분히 해소되고 나면, 그 다음엔 조금 더 깊게 말해도 괜찮다. 최소한 내가 말하는 것들이 튕겨나가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