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큰 인기를 끈 드라마입니다. 힘들거 거친 삶을 살아온 20대 이지안(이지은 분)이 박동훈(이선균 분)이라는 40대 아저씨의 따뜻한 성품에 감회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따뜻한 이웃집 아저씨의 느낌 가득한 드라마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감동을 한 이유는 우리 주변에 박동훈 같은 따뜻한 아저씨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아파트에 살면 이웃에 누가 사는 지 큰 관심이 없습니다. 예전엔 이사를 오고 가기 전에 인사를 드리는 문화가 있었지만 이제는 옆집에 위 아래 층에 누가 이사를 가던 말던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층간 소음으로 멱살 잡이나 안 하면 다행이죠
이렇게 이웃과의 관계가 끊어진 삶들을 살다 보니 주변에 아는 어른들이 많지 않습니다. 아는 어른들이란 학생이면 선생님들과 친인척이 대부분이고 20대면 학교 선배나 교수님이나 알바하는 가게 주인 등이 대부분입니다.
직접적으로 아는 어른들은 적지만 간접적으로 보는 어른들은 많습니다. SNS 이웃이나 길어서 보게 되는 어른들이 많죠. 그런데 이런 직간접적으로 보는 어른 들 중에 존경할 만한 어른들이 많을까요?
박동훈 같은 어른이 많을까요? 감히 말하지만 한국에서 존경할 만한 어른보다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라고 손가락질 받은 어른들이 더 많습니다. 가만히 살펴보세요. 무단횡단하는 사람들.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는 사람들, 무례한 행동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이든 어른들입니다.
나이들면 부끄러움이 적어진다고 하죠. 20대 때는 세상 사람들이 다 나만 보는 것 같은데 나이들수록 사람들이 날 쳐다 보지 않음을 넘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나이가 많아서 자리를 양보 받고 인정해주고 대우해주는 사회적 분위기에 고마워하지 않고 내 맘대로 해도 되는 줄 알고 행동하는 추잡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지~~~"라고 시작하는 꼰대의 말이 남이 듣던 말던 계속 떠듭니다. 왜 이렇게 존경은 커녕 무례한 어른들이 많은 걸까요?
시대가 바뀌었지만 왕년에만 외치는 어른들
농경사회는 1년 사시사철만 경험하면 대부분의 경험들이 1년 단위로 무한 반복하게 됩니다. 가끔 큰 물난리가 나고 병충해가 생기기도 하지만 다 예측 가능합니다. 따라서 가장 많은 1년을 경험을 한 나이든 촌로가 가장 경험이 많습니다. 이 촌로들의 경험은 농사일을 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촌로는 마을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의 경험까지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이든 어른은 나인든 만큼 경험이 많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을 깎듯하게 모시고 나이든 어른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도와주면서 공생의 시대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를 사는 우리의 대부분은 도시에서 삽니다. 도시는 삶의 단위가 1년이 아닙니다. 아예 없다고 할 정도로 변화무쌍합니다. 수 많은 지식과 정보가 계속 생산됩니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정보력이 떨어질 정도로 수 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런 정보화 사회에서 어른들 특히 노인들의 경험 중 삶에 대한 경험 말고는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른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검색을 통해서 지식인 서비스에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르고 다양하고 정확합니다. 이러다 보니 어른들의 경험이 큰 쓸모가 없습니다. 게다가 삶의 경험이라는 것도 자식이나 아랫 세대에게 큰 도움이 되지도 않고 오히려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라는 자신의 삶이 정답이라고 우기고 주입하고 강요합니다. 이런 분을 우리는 꼰대라고 하죠.
배우려고 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하는 어른들
세상이 변하면 변한 만큼 인정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각도 유연해 집니다. 그러나 새로운 정보를 공부하지 않고 자신이 젊었을 때 배운 공부와 지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생각을 주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삶의 교과서이자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남들 특히 요즘 것들이라고 하는 20,30대들에게 가르치려고만 하죠
이런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이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점점 고립되어가는 삶을 살게 되면 점점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공중도덕을 어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든 중노년층인 것을 보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외롭게 살고 있는 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나이든 것이 계급인 사회인 것도 무시 못하죠. 나이 들었다고 무조건 대접받으려는(요즘은 줄었지만) 사람이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좋은 어른이란 울고 있는 아랫 세대 사람이 있으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내가 너 보다 더 많이 살아봐서 아는데가 아닌 같이 울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포용력이 좋은 사람이 진짜 좋은 어른이 아닐까요?
그런 어른이 많았으면 합니다. 내 집 가격이 내려간다면서 장애인 관련 시설을 반대하는 어른들이 많은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이지안의 고통을 안아주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많아졌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