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한때 열렬한 가치투자 추종자였습니다. 물론 제가 즐겼던 투자는 저PBR의 딥 벨류에 있는 종목들을 투자하는 정통적인 가치투자는 아니고 PER벨류에이션을 주로 사용하는 성장주 위주의 가치투자자였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어떤 기업이 현재 15배를 받고 있는데 회사가 속한 산업의 성장률, 규모, 경쟁 현황, 기업의 경쟁력 등을 판단하고 20~25배의 per을 목표로 정해 투자하는 가치투자 형태였습니다. Pbr 0.3배 주식이 0.4배 주식이 되는 것과 per 15배 주식이 per 20배 되는 것은 넓은 범주에서 가치투자라고 할 수 있지만, 일부 분들은 pbr벨류에이션만이 진정한 가치투자자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물론 저는 적정가치보다 저평가 되어있는 종목에 투자하는 방법은 모두 가치투자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치투자자와 반대 진영에 서 있는 것이 모멘텀 투자입니다.
모멘텀 투자는 쉽게 말씀드리면 주가가 오르는 종목에 배팅하는 전략으로, 해당 종목에 우리가 소위 말하는 ‘호재’가 발생하는 경우에 투자자들의 수급이 급격하게 쏠리면서 상승하는 타이밍을 캐치해 따라서 사는 개념입니다. 기업의 실적이나 벨류에이션, 경쟁력 등을 보는 것 보다는 현재 발생한 모멘텀의 강도를 보면서 투자하기 때문에 이 측면에서 가치투자자와는 반대 포지션에 있습니다.
제가 예전 글에서도 적었지만 저는 주식을 처음에 차트로 접한 후 펀더멘털을 많이 따지는 투자자로 바뀌었는데 그때 읽었던 책들이 아무래도 가치투자 관련된 책들이 많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가치투자자 진영에 서서 모멘텀 투자자들을 비판적 시각으로 봤던 것이 사실입니다. 뭐 좀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주가가 오른다고 같이 따라서 산다는 것이 자존심이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때 제 고집스러운 모습이 약간은 우습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식시장 내에서 구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저도 모르게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정말 가치투자만이 투자의 정석이고 유일하게 돈을 벌 방법일까요?
제가 가치투자를 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타이밍이었습니다. 싼 주식을 찾는 일이 어려운 일일까요? 사실 조금만 공부해보신다면 벨류에이션이 낮은 주식 찾는 것은 쉽습니다. 솔직히 널려있습니다.
제가 호기롭게 벨류에이션이 낮은 A주식을 호기롭게 매수했다고 생각합시다. 그럼 저는 이 주식에 대한 매도타이밍을 제가 생각했던 벨류에이션에 도달했을 때 매도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타겟 수익률도 정해놨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벨류에이션이 낮은 주식은 안타깝게도 주가를 짓누르고 있는 그 만의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A주식에서 수익을 내고 exit하기 위해서는 주식을 짓누르고 있는 이유가 해소되어야 하는데, 언제 해소될까요? 운이 좋아 투자한 후 단시간 내에 해소되었다면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수 년이 걸린다면요? 그 사이에 주가가 더 떨어졌다면 추가로 더 매수 하시겠습니까? 이는 시간과 자금 측면에서 엄청난 기회손실이 발생합니다.
두 번째 경우입니다.
보물 같은 투자포인트를 발견했다고 칩시다. 과연 이 투자포인트를 시장에서 알고있는 사람이 저 혼자 뿐일까요? 만약 그 회사를 증권사의 애널리스트가 커버하고 있다면 아마도 여러분이 발견한 보물 같은 투자포인트는 미안하지만 ‘보물’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럼 아무도 커버하지 않는 초소형주 (시가총액 1000억 미만) 이라면요? 그럼 좀 가능성이 있겠습니다만,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1000억 미만 종목에 관심을 가질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기관, 외국인은 시가총액 1000억 미만 종목을 잘 건들지 못합니다. 회사가 IR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회사가 많기 때문이죠. 그럼 아무리 좋은 투자포인트를 알고 있다하더라도 이 것이 빛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또 시간이 걸린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결론적으로 가치투자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만약 자신이 운이 좋다면 다른 투자자들이 제가 봤던 투자포인트를 알아채고 매수해줘서 저는 수익을 내고 나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생각보다 긴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아마도 주식투자를 해보신 분이라면 이 기다림이 꽤 고되고 길다는 것에 동의하시는 분이 많으실 거에요. 저는 이게 가치투자의 가장 큰 단점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주식시장은 정말 수많은 투자자가 익명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국면마다 시장의 특징이 다릅니다. 2017년 주식시장은 모멘텀 투자자에게 매우 유리한 시장이었습니다. 오르는 종목만 일 년 내내 올랐으니까요. 만약 가치투자였다면 오르는 종목에 못 탔을 것이고 일년내내 한숨으로 시간을 보냈겠죠. 우리가 주식투자를 취미로 한다면 1년 정도 버텨내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만, 경제적 자유를 위해 한다면 얘기가 조금 다를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2017년을 보내면서 모멘텀 투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섞어 보자는 결론을 도출했지요. 그렇습니다. 정통 가치투자자분들은 저에게 변절자라고 욕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작년부터 주식을 피킹함에 있어서 모멘텀 팩터도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약간은 소극적인 모멘텀 투자자입니다.
아주 비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코오롱인더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지금 사업 현황은 그렇게 좋지 못합니다. 원재료의 상승이 제품 가격으로 전가가 잘 되지 못해서 상반기에 실적을 죽 쑬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주가는 당연히 이를 반영해서 고점대비 꽤 많이 하락해있죠. 여기다가 작년부터 기대를 모았던 CPI필름도 삼성전자가 폴더블폰에 양산을 소극적으로 대하면서 기대감도 실종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회사를 아주 눈여겨봅니다. 우선 코오롱인더라는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는 대략 공부를 다 해놓습니다. 현재 이 회사가 처한 사업의 사이클을 공부해놓는 거죠. 회사의 경쟁력으로 본다면 벨류에이션은 비싸다고 볼 수 없습니다. 가치투자자로서도 충분히 투자 가능한 영역이죠. 만약 예전의 저라면 이미 사놓고 주가가 빠질 때마다 물타기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반기에 기존에 투자했던 공장이 가동되고, CPI에 대한 기대감도 조금씩 확대 될 것이기 때문에 주가가 뛰면 저는 그때 되면 수익이 날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언제가 될지 혹시 아십니까? 아시면 저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
코오롱인더는 제 관심종목에는 있지만 포트폴리오에는 없습니다. 왜냐고요? 모멘텀이 발생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멘텀은 실적모멘텀이 될수도, CPI모멘텀이 될수도 있겠죠. 조금 비싸게 사면 어떻습니까? 저는 시간이란 엄청나게 큰 기회비용을 아꼈으니 꼭 바닥부터 사서 먹지 않아도 제 나름대로 이익을 챙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는 제가 투자하고 있는 방식의 한가지 예입니다. 이에 추가하여 저는 요즘 신고가 투자에도 예전보다 많이 관대해졌습니다. 주가가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은 회사도 그 길을 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가치와 모멘텀 투자 사이에서 방황하시기보다 이 투자방식들로부터 장점만을 가져와 자신만의 주식 매매 스타일을 완성해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