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莊子]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애타타'는 추남이지만 덕을 갖추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매력적인 사람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애타타'는 못생긴 추남인데다, 곱사등이였고 어리버리한 행동에 남을 구제해줄 만한 권세나 명예도 없었고 재산도 무일푼인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학식이 있고 지식이 높으냐면 그런것도 아니고, 남을 이끌어갈 만한 지도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현대인으로 평가하자면, 명문대 스펙도 없고 재능도 없고 외모도 볼 것 없고 집안도 볼 것 없고 언변도 없고 몸도 둔하고, 뭐하나 제대로 내세울만 한 것이 단 하나도 없는 병신중에 병신이요, 거지 중에 거지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남녀가 그의 앞에 모여들고,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며, 공적이 없어도 임금께서 친히 나라를 맡기고 싶어할 정도였다고 한다.
장자 [莊子]가 이 글을 쓸 때의 시대상황이 어떠했는지, 그 당시의 문화관습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날의 상식적인 관점으로는 허무맹랑하고 믿기지 않는 이야기 임에 틀림이 없다. 아마도 장자 [莊子]는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기 위해서, 그의 책에서 '애타타'라는 비현실적인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깊게 따져볼만한 것이 있다. 과연 매력적인 사람이라는것은 어떤 것인가? 에 대한 철학적사유의 소재를 생각해볼만 하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사실상 학벌 권위 외모 재물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잡아끌어서 인기를 얻어보려는 열망에서 부터 기인한다는 주장에 부정할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잡아끌어서 인기를 얻고 싶어한다는 것, 이것이 사실은 사랑의 갈망이고 사랑을 바라는 욕구이다. 인간 존재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의 이유가 사랑의 충만함을 갈망한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는 진리이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의 장자 [莊子]는 사람들에게서 인기를 잡아끌 수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德(덕)이 충만하게 되면 매력적인 사람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장자가 생각하는 德人(덕인) 혹은 德充人(덕충인)이라는 개념은, 세속과 거리를 두고서 자연속에서 유유자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장자의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의미는 마치 오늘날의 인기연예인처럼 사람들 속에서 인기를 얻는 사람이다. 장자 [莊子]에 등장하는 애타타는 그 대표격인 인물인데, 그와 함께 지낸 사내들은 그가 그리워서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였으며, 그를 본 여자들은 ‘다른 이의 아내가 되느니 차라리 그 분의 첩이 되겠다.’고 간청을 할 정도였고, 그 여자의 수가 몇 십 명인데도 그렇게 첩이 되고 싶어하는 여자가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정도의 매력을 지닌 사람이 또 있었을까 싶다.
중국고전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일 것이라는 추측으로 그 현실성을 깍아내릴 수는 있겠지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남자였음에 틀림이 없으리라. 장자의 '애타타'가 왜 그렇게도 매력이 있었는지 공자[孔子 ]의 입을 빌려서 해석하기를 , ‘재능이 완전하고 德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才全而德不形)’ 이기 때문에 그토록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재능의 완전함(才全)과 덕이 드러나지 아니함(德不形)"이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요소라는 것이다. 애타타는 재능이 전혀 없는 무능한 사람으로 등장을 하는데, 재능이 완전하다는 것은 또 무슨소리일까?
이것 역시 장자는 공자[孔子 ]의 입을 빌려서 해석하기를,
죽음과 삶, 보존과 패망, 곤궁함과 영달, 가난함과 부유함, 현명함과 어리석음, 치욕과 명예, 배고픔과 목마름, 춥고 더움 따위는 사물의 변화이며 천명이 유행하는 것입니다. 밤낮으로 앞에서 교대하는데, 인간의 지능으로는 그 시작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마음의 평안을 어지럽히기에는 부족하며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게 해야 하며, 그런 변화로 하여금 조화되고 즐겁게 하여 막힘없이 통하게 하여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야 하며, 밤낮으로 쉴 새 없이 만물과 더불어 따뜻한 봄과 같은 관계를 이루어야 하니 이것은 만물과 접촉하여 마음속에서 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재능이 완전하다고 합니다.”
장자가 주장하는 재능의 완전함이라는 것은, 삶과 우주만물의 변화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만물의 변화와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과 죽음, 가난과 부귀, 치욕과 명예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하니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언제나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가까이 할 사람 멀리 할 사람식으로 구분해서 상대하지 않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하니, 사람들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장자가 생각하는 재능의 완전함이라는 의미는 현대적인 개념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수학적 예술적 문학적 체육적 재능이든, 어느 한 가지 남들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뽐 낼 수 있어야만 "재능이 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장자는 우리같은 범인들이 생각하는 관점과는 전혀다른 측면에서의 재능이라는 의미를 생각하였나보다.
그리고 " 덕이 밖으로 드러나지 아니함(德不形)"에 관하여 다음 같이 설명을 한다.
“평평한 것으로는 정지하고 있는 물이 가장 성대합니다. 그것이 기준이 될 수 있으니, 안에서 잘 보전되고, 밖으로 波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德이란 완전한 평정을 닦은 것입니다. 德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떠날 수 없습니다."
덕이 드러나지 아니함이란 물이 고요함을 간직하여 흔들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물이 고요해야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鑑於止水(감어지수), 明鏡止水(명경지수)의 경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덕이 드러나지 아니한 사람은 成心(성심)즉 선입견 편견 없이 사물을 보고 대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떠한 사람도 배척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포용한다. 그러하니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덕이 충만하여 드러내지 않는다? 쉽게 이해가 될 듯도 안될 듯도 하다.
흔히 덕을 드러내고 덕을 베풀라는 말은 많이 들아보았어도 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말일까 궁금한데, 이것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마도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친 덕의 베품을 경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이분법적인 판단으로 어느 누구는 잘 대하고 어느누구는 멀리하고를 하지 않는 것을 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으로 주장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자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오늘날의 우리같은 범인들이 생각하는 학벌좋고 인물좋고 출신좋고 스펙좋은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겉모습이 아니라 내적인 덕의 충만함을 의미하는 것인데, 여기서도 다소 우리의 통상적인 개념들과는 차이가 있다. 장자가 생각하는 덕이 충만한 사람은, 사물을 이분법적 관점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를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과 다투거나 다른 사람을 억지로 가르치고 이끌려고 하는 법이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는 그 경지를 옳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라는 것이 엄청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기는 하지만, 과연 모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무엇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 그리고 각 상황마다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내 마음의 평정심을 또 어떻게 유지해나가야 하는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 진짜 성장이고 확장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