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 방면으로 수색을 나갔던 부대가 포로들을 잡아 왔다. 포로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첫째, 북한군 제2군단장 김무정 중장이 강계의 김일성에게 와서 군단재편을 위한 병력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중공의 대군이 만포진으로부터 강계로 남하 중이며 일부는 이미 강계를 거쳐 희천으로 갔다
셋째, 창성 방면에도 중공군 대부대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이대용은 대대장 김용배 중령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했다. 대대장은 “대세는 이미 결정 되었는데 그까짓 뗏놈 쯤이 별 수 있을라구”하고 했다. 국경선 경비부대 모든 장교들은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 능력을 대단치 않게 판단하고 있었으며, 우리 국군과 유엔군들은 월경한 중공군 정도는 손쉽게 만주땅으로 쫓아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미 온정 북진 방면에서 우리 제 2연대가 중공군에게 고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제6사단 예비대로 제19연대가 있고, 또 제2군단 예비대로서 제7사단이 있으니, 별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도장 강변 마을은 평화로우며, 전쟁은 끝난 것으로 생각되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됐다. 병사들은 물고기를 지져 놓고 초산 양조장에서 나온 술을 마시며, 회식하느라고 법석대며 좋아했다. 이대용은 대대장이 보내준 소주를 반주삼아 서 소위와 국토통일을 축하하는 축배를 들었다.
취기가 돌아 박태숙과 정정훈의 설겆이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10월 28일이었다. 국경선에 도달한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오후 4시 30분경 아군 제2연대가 중공군에게 격파되어 분산중에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0월 28일 오후 5시경, 초산읍에 있는 제1대대 본부로부터 다음과 같은 작전명령이 하달되었다.
“ 온정 일대에서 제2연대가 중공군에게 패하여 후퇴중에 있다. 이를 구원하기 위해 제1대대는 연대의 일부로서 온정으로 남하한다. 제1중대는 10월 28일 오후 7시 초산읍에 집결하라”
이대용은 명령을 받자 마라 바로 대대장 김용배 중령에게 전화를 했다. 죽더라도 국경선에서 철수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김용배 중령은 이대용은 제2연대가 전멸의 위기라고 하니 이들을 빨리 구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대용이 소대장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소대장들도 국경선 철수 명령은 취소해달라고 건의해왔다. 이대용은 김용배와 같은 심정으로 소대장들을 설득했다.
1950년 10월 28일 밤 6시 45분, 이대용의 제1중대는 만주에서 관측되지 않는 지점에서 5대의 트럭에 분승하여 압록강변을 떠나 초산읍으로 향했다. 53시간의 국경경비 임무에 종지부를 찍고 철수했다.
그날밤 제1대대 지휘관 회의에는 제1대대장 김용배 중령, 부대대장 조현묵 소령, 제1중대장 이대용 대위, 제2중대장 박인권 중위, 제3중대장 김명익 대위, 제4중대장 최종석 중위가 참가했다.
이대용은 중대로 돌아와 선임장교겸 제4소대장 서근석 소위, 제1소대장 이장원 소위, 제2소대장 김덕출 소위, 제3소대장 대리 박상호 상사, 중대 선임하사관 김지용 상사를 모아놓고 다음날 아침의 차량행군에 대한 명령을 하달했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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