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읽던 책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를 이어서 읽습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 아들이 장애인이 될거라고는. 이처럼 사람은 직접 겪지 않고는 절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용산 참사가 버티기 세입자들 탓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자기 동네가 재개발 들어가자 용산 참사를 다시 보게 됐다고 하듯이 저도 장애라는 걸 새롭게 보게 되더군요. 아내는 활동보조 자격증을 취득했고 저는 장애 관련 자료들이 눈에 보이면 읽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관심밖 분야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그러니까요.
1993년 노들야학이 개교합니다. 장애인운동청년연합회의 산하 단체로서 장애인의 교육, 노동, 이동의 권리를 증진하고 장애인 자립생활을 모색하기 위한 운동단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장애인은 사회로부터 격리되기 쉽상입니다. 실제로 정신장애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죽는 날까지 집 밖을 못 나간다고 하더군요. 밖에 나가면 비 장애인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사고가 나서 사고사를 당할까봐서도 있겠지요. 정신장애의 경우 사망 원인 1위가 사고사입니다. 일반인이 병으로 죽는 것과 달리 장애인은 사고로 죽는다고 하는군요.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장애인들의 연대와 사회적 행위의 조건으로 '교육'을꼽았다고 합니다.
노들야학은 오랫동안 장애인 당사자의 교육 공간인 동시에 장애인운동 활동가의 산실이었다. 2000년대 이후 벌어진 장애인 이동권 투쟁, 교육권 투쟁, 활동보조 등 사회서비스 확보를 위한 투쟁, 장애등급제 및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투쟁 곳곳의 중심에 노들야학이 있었다.
노들야학은 교육을 통한 장애해방운동을 지향한다고 합니다. 교육만이 살 길이라며 전재산을 팔아 학교를 지은 일제때의 독립운동가들이 생각납니다. 일반학교만이 아니라 군사학교도 만든 우리의 영웅 후손들은 독립 후 권력을 잡은 친일 후손들 때문에 해외에서 살아야 했죠.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외국인이 되어 있습니다. 너무 슬픈 현실이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더니 딱 지금의 현실입니다. 친일 잔재와 독재 잔당이 아직도 권력을 휘두르고 있고 검찰개혁은 멀어 보이기만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이 시대의 숙제가 바로 검찰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암튼,,, 교육은 중요합니다. 일제때 해방을 위해 교육에 힘쓴 독립운동가들처럼 장애인 해방을 위해서도 교육에 힘써야 함에 당여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라고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육만 잘 한다면 보통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장애인 복지는 신체장애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들만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이죠. 정신장애는 바로로 취급받거나 사회와 격리시켜야 할 병으로 생각하는 게 현실입니다. 요즘은 그래도 인식이 많이 좋아진 편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정신장애를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남아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 신체장애인들은 돈이 남아돌 정도로 정부지원이 나오고, 정신장애는 처절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정신장애도 장애인데 차별하는 정부는 이 사항을 개선해야 합니다.
노들야학이 한 일은 대부분 신체장애인들을 위한 일이더군요. 좀 아쉽긴 합니다. 정신장애도 장애인데 신체장에 쪽으로만 치우쳐 일을 해왔더군요. 정책과 예산을 끌어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지만 좀 아쉽습니다. 그 장애라는 것을 신체장에 쪽에 너무 치중되게 했더군요.
장애인 탈시설과 사회적인 삶 찾기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과연 제 아들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아직은 엄마 아빠가 젊기에 보호해줄 수 있고 아직은 아들도 어리기에 주위에서 나쁘게 보진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어른이 되면 주위사람들은 다른 시선으로 보고 피하려고 할 것입니다. 저는 아이가 컸을 때가 너무 두렵습니다. 집에서만 지내야 하는 애어른. 이 아이를 어떡하면 좋을까요. 얼마전 아내가 '지가 난 새끼들이랑 동반자살하는 부모들 마음이 요즘은 이해되더라.'라고 말하더군요. 저도 이해됩니다. 만약 제가 죽는다면 저는 혼자 살아가야 할 아들이 불쌍해서 눈을 못 감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폐증 자식을 둔 부모의 소원이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사는 거라고 합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지 누가 정신장애를 가진 어른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