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피아 대치선은 다음과 같다
임진강-철원북방-문등리-이포리-고성
북한군은 주력을 동해안에 두고 제1,2군단을 문등리-신탄리-원대-고성을 연하는 선에 배치하고 있다가 52.7.14-7.21 사이에 제2군단은 제3군단에게 전선을 인계하고 금강산 지구로 철수
북한군은 차기공세와 정전회담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맹렬한 수색 정찰전을 감행
7월 10일 -23일간 한국군 제5사단 전면의 351고지 지역에 북한군 제1군단 9사단은 7회에 걸쳐 공격
9월 22일 제3군단예하의 1개 대대 2개 중대 병력으로 한국군 제8사단 정면의 854, 812에 대해 2차에 걸쳐 공격, 10시간의 교전 끝에 격퇴
후방지역에서 1951년 12월 제6군단을 해체하여 그 병력을 제1,2,3군단에 보충
제7군단은 원산지역에서 제5군단은 영흥-함흥 지역간 해안방어와 재편중 서부지역에서는 제4군단이 평양 옹진 일대에 배치
서해안으로부터 아군의 상륙을 경비하는 한편, 일대에 산재하는 도서에 대한 경비 임무를 담당
(약 10개월의 기간이었지만 전선의 움직임은 351지역을 제외하고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전선은 소강상태로 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