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전세계에는 유동성이 넘쳐났습니다. QE(양적완화)는 미국에서 3차례 이상 진행되었고, 중국의 티에공지를 비롯해서 일본과 유럽도 경쟁적으로 돈을 풀었습니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장기간 저금리였고 세상 어디를 가도 돈이 넘쳐났습니다. 아이들의 소꿉장난은 물론이고, 스타트업, 암호화폐 할 것 없이 모두 우상향! 우상향!을 외쳤습니다. 물론, 독일,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들의 주식 시장도 역대급 강세장을 장기간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자산시장의 분위기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미국 주도로 금리인상이 몇차례 있었고, 앞으로 금리 인상이 트렌드가 될 듯 합니다. 금리가 인상되면 너무도 당연하게 돈의 가치는 높아지고 시장의 유동성은 줄어듭니다. 유동성 파티를 할 때는 스타트업 창업자들도 앱 하나 만들어서 쉽게 투자를 받았고, 주식 시장에서는 가치주들이 죽어나가는 대신 성장주가 끝없는 불을 뿜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죠.
게다가, 전 대륙의 여러 신흥국들의 경제 상황이 일제히 그리고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중국 말 한마디에 휘청휘청하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부채나 외자투자만 많은 국가들은 더 취약한 상태입니다.
자산 시장의 거품이 서서히 꺼지는 동안,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자금이 유출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라고 용가리 통뼈는 아니지요? 펀더멘털이 튼튼한 기업들도 자금 유출 압박에 주가 흐름이 지지부진한 상황인데, 펀더멘털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암호화폐들은 상황이 더 나쁜건 당연합니다. 아직은 후발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시세가 버텨줘야 하는데, 이제 더 들어 올 후발자금이 얼마 없습니다. 들어올 사람은 대부분 들어왔고, 초반에 들어온 사람들은 고점에서 물량을 대거 털고 탈출한 상황입니다.
시장에 유동성은 점점 한정되어 가는데, 투자처는 너무 많습니다. 부동산, 상장주식, 스타트업, 게다가 암호화폐에 그 거품의 끝을 알 수 없는 미술품에 온갖 미디어와 컨텐츠 상품들까지. 유동성이 축소되는 국면에서는 쓸데없는 자산들은 소멸할 것입니다.
제가 이번 암호화폐 시세 대폭락을 긍정적으로 보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몇해전에 제가 장기간 지켜보던 비에이치라는 기업에 탐방을 갔습니다. FPCB를 생산하는 업체입니다. 스마트폰이 등장했을때 물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업체들의 capa(생산시설)도 가파르게 증가했습니다. capa가 수요보다 빨리 늘고, 수요는 생각보다 빨리 꺾이면서 비에이치와 같은 FPCB 업체들의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중소업체들은 대부분 도산하고, 업계 1, 2, 3위 업체들도 적자에 허덕이다가 업계 2위 업체였던 플렉스컴도 도산하고 맙니다. 이렇게 얼추 시장이 정리되고 나니, 살아남은 비에이치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어려운 시절이 가고 쏟아지는 주문과 폭발하는 실적은 '6개월만에 주가 10배 상승'이라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저희팀이 비에이치에 기업탐방을 갔을 때 최저점이었는데 그 다음주부터 주가가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참 기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 물론 오래도록 지켜 본 기업이었으니까요.
어쨌든, 어떤 분야나 치킨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모두가 배고프고 힘듭니다. 그러나 모두가 도산하고 살아 남는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익을 누리게 됩니다. 저는 지금 쏟아지는 암호화폐들도 한정된 유동성을 두고 서로간에 경쟁하는 치킨 게임 중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폭락장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야 말로 정리될 친구들은 싹 정리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암호화폐에 대한 세상의 관심도 많이 꺼진 상태이니 이제야 말로 진짜 바닥을 다질 타이밍이라고 봅니다. 정리될 것들은 싹 정리되고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블록체인만 장기적으로 큰 이익을 누리리라 생각합니다. 그 중 하나가 당연히 스팀이 되길 바랍니다. 어떤 버블이든 나쁜 버블은 없습니다. 버블이 지나고 살아 남은 것들은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버블은 시대가 갈 방향을 정해줍니다. 이제는 버블이 꺼졌으니 누가누가 살아남나 지켜보고 응원할 차례입니다.
저는 스팀을 구매한 적이 없지만, 스팀이 이번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아서 앞으로 어떤 유의미한 행보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되면 얼마든지 스팀을 살 의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아닙니다. 제 능력 부족으로 스팀을 밸류에이션 할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부디 모든 스팀 투자자분들이 큰 수익을 올릴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