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아 친구와 1박2일 경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
10대를 함께 보내고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었는데 둘이 떠난 여행이 터키 이후로 겨우 두번째네요 하하
경주는 6학년 때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 다녀왔어요.
좋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기에 가고 싶은 곳이었는데 이제서야 다녀왔습니다.
이상하게 해외보다 국내 여행의 기회가 더 갖기 힘든 것 같아 슬퍼요.
봄맞이와 힐링을 위해 다녀온 경주 여행 속 단상과 모습을 천천히 남겨볼까 합니당-
#KTX의 한 아주머니
서울역에서 KTX역방향 좌석을 타고 두시간을 달려 신경주로 간다.
동대구를 지나 부산까지 가는 KTX에 올라탔다.
앞에 앉으신 사투리를 쓰시는 아주머니는 부산에 결혼식을 가시는 길인가보다.
역방향인 좌석을 보자마자 맘에 안드셨는지
내내 멀미가 난다고 투덜거리며 자리를 바꿀 수는 없을까 주위를 둘러보신다.
승객이 가득 찬 기차 내 멀미해소를 위해 몸과 얼굴은 창을 향해 돌아 앉은 채로
말 없는 옆친구에게 창을 보며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시는 모습이 꽤나 우습다.
누구 아들은 나이가 몇이고 뭐하는데 결혼을 안하고
누구 딸은 어떻네 하며 내내 아는 자식들을 총동원해 두 시간 내내 남의 자식 결혼얘기를 하신다.
언급된 자식들은 자기 삶에 1도 보태줌이 없을 듯한 이 아주머니의 입에
본인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있음을 알까. 알아도 신경 쓰지 않겠지.
그런 대화를 듣고 있자니 왜 부모들이 자식의 결혼에 그토록 목을 매는지 알 것 같긴 하다.
자식 가진 부모라는 지위가 아마 이 세상 어떤 것보다 높기도, 어떤 것보다 낮기도 한가보다.
뭐가 저렇게 하늘같이 당당하고, 뭐가 저렇게 억울하고 쪽팔릴까.
아직 자식이 없어 모르겠지만, 최소한 자식이 곧 내 自尊이 되는 저런 부모는 되지 말아야지.
공교롭게도 최근 결혼을 준비하며 부모님 문제로 걸림돌이 있었던 지인들의 시댁 혹은 처가는
모두 경상도였기에 지역적 편견을 지양해야함을 알면서도
혹은 그렇게라도 이유거리를 찾아 이해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내 머릿속에 경상도 어르신에 대한 틀이 자리잡혀 있었다. 물론 우리 친할아버지도 한 몫 하셨다.
그런데 내 앞에 앉으신 아주머니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시니, 혼란이 온다.
서로의 삶을 속속들이 아는 친구들이 점점 줄어든다.
나 또한 과동기나 동아리선배가 어떻게 사는지는
누구랑 어디서 언제 결혼을 했네 정도를 건너듣는 것뿐임을 자각하고 나니
앞자리의 시끄러운 아주머니를 안좋게 볼 수만은 없어 슬프다.
어쩌면 아는 게 없어 할 얘기가 그것 뿐일지도.
그렇게 우리는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본 이들의 입에 열심히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내가 어떤 모양으로 언급될지 감도 오지 않지만
아마 언급되는 대상들과의 상대적인 비교로 결정되겠지.
씁쓸함을 느껴버린 나와
시끄러운 앞자리의 아주머니를 역무원에게 컴플레인할 걸 꾹 참았다는 친구는
그렇게 스물아홉의 나이가 되어있다.
친한 친구와 단둘이 떠나는 고작 두번째 여행 길에서, 이런식으로 나이를 느껴버렸다.
#신경주역
아직은 찬 바람이 가시지 않아 쌀쌀하다.
신경주역의 화장실은 변기 물이 누렇다.
모두들 놀라며 나와 다시 줄을 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자세히 보면 가뭄으로 인해 정화수를 사용해 물이 노란 것일 뿐 더럽지 않다는 안내문이 있다.
보기에 색만 다를 뿐 냄새가 나거나 더럽지 않다.
투명하여 이물질이 다 보이는 변기 물을 더럽히는 것보다
누런 황색에 묻어가듯 변기 물을 더럽히는 게 나쁘지 않다.
어차피 같은 변기물인데 색으로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여행객을 맞는 KTX 역의 화장실의 변기물로 첫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경주, 나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