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손님이 찾아 왔었다. 아들과 함께 만두가 가득 든 봉지를 들고서. 아이는 한 대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어찌나 귀엽던지, 회사 기념품 같은 걸 잔뜩 챙겨 주었다. 그리고 손님이 다른 구성원과 이야기 나눌 동안 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가 머릴 쓰다듬었다 하면서 이것저것 물었다. 아이는 2학년이라고 했다.
그 얘길 듣고 놀라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이제 막 자기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된 나이인 줄 알았는데 2학년이라니. 불과 몇 분 전의 내 행동을 돌아보았다. 귀엽다며 내 멋대로 끌어안았던 그 순간을.
마음대로 끌어안을 나이가 아니잖아? 2학년이면 같은 반 아이들 중에 조숙한 아이들은 키도 제법 클 테고 설마 2차 성징이 시작된 애들도 있을까? 이런 생각을 이어가며 내 마음대로 껴안았던 걸 후회했다. 볼일을 마친 손님은 내게 아들을 챙겨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아, 네. 뭘요. 다음에 또 아드님이랑 놀러 오세요."
나는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문밖까지 그 부자를 배웅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한참 동안 그 아이와의 짧았던 만남을 곱씹었다.
2학년짜리를 내 맘대로 끌어안다니 너무했어. 2학년짜리를 내 맘대로 끌어안았어요. 너무했죠?
동료들에게 내가 했던 행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약간의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것 같다. 동료들은 대수롭지 않게, 뭐 어떠냐고 괜찮다고 말했다.
그래, 별거 아닌 일일 거야, 마음을 놓고 있다가 다시 한번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음대로 끌어안을 수 있는 나이가 따로 있나?
그간 내 행동을 돌아보니 갓난쟁이 티가 나는 아이는 부모에게 허락을 받고 안아 봤었고. (대체로 그렇게 어린 아이는 부모가 안고 있으니 내가 안으려면 안아 봐도 되냐고 물어야 했었다.) 제 의지로 걸어 다니는 아이들은 부모나 아이들의 허락 없이 머리를 쓰다듬고 안고 했었다. 대여섯 살 정도까지의 아이들은 그렇게 대했고 초등학생처럼 보이면 아이가 부끄러워할까 봐(싫어할까 봐도 아니고) 조심스럽게 대했던 것 같았다.
왜 말 못 하는 아이는 부모 허락만 있으면 안고 뽀뽀하고 그런 방식으로 예뻐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건지, 왜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는 낯선 어른이 와서 껴안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 여러 고민들로 어지러운 하루였다. 그런데도 그 일을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다 오늘이 되어서야 다시 생각이 났다.
요가 교실에서 만나는 어르신들 때문이었다. 요즘 아침마다 동에서 운영하는 체육 센터로 요가를 배우러 다닌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움직임도 많지 않은 편이라 용기를 내서 요가 교실에 등록했다. 그나마 쉬울 것 같아서 선택한 게 요가다.
하지만 직접 해 보니 요가도 쉬운 운동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요가는 운동이 아니고 심신을 단련하는 수련법이었다. 선생님이 알려 주는 체위, 호흡, 명상을 따라 하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선생님을 따라 동작을 하면서 벽면의 거울로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면 모두가 나보다 잘 하고 있었다. 나만 어정쩡한 모습으로 때때로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고, 호흡을 조절하지 못해 한 번에 깊은 숨을 내쉬느라 신음 같은 걸 내뱉기도 했다.
선생님은 내 눈빛을 읽었는지, 남과 자신을 비교하려 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어도 위로가 되진 않았는데,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강생이 60대나 70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 또한 나이에 대한 편견이겠지만) 그런데도 내 몸이 제일 뻣뻣했다.
어르신들은 요가를 오래 했는지 몸이 유연했다. 그리고 모두가 형님 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 틈에 내가 있었다.
한 달쯤 다니고 나니 어르신들은 종종 내게 말을 붙이려고 했다. 젊은 사람이 빼먹지 않고 잘 다니네, 같은 말을 자신들끼리 하는 걸 여러 번 들었다. 그게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 건 잘 알고 있었다. 그걸 계기로 눈인사 같은 걸 주고받게 되면 수업 전의 수다에 합류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녔다.
오늘 수업 시작 전의 일이다. 한 어르신이, 왜 이렇게 바닥이 더렵냐며, 선생님의 물휴지 몇 장을 뽑아 와 자기 자리 주변을 닦았다. 그 후로 또 몇 어르신이 물휴지를 뽑아 와 자기 자리를 시작으로 주변을 닦았다. 어느새 나를 제외한 어르신 모두가 바닥을 닦고 있었다. 행동은 느리지만 눈치만큼은 빠른 나는, 어르신들이 나를 흘끔 보고 있단 걸 느꼈다. 그 눈빛이, 왜 너는 바닥을 닦지 않느냐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내 앞에 있는 어르신이 물었다.
"거기 옆에 자리는 안 더러워요?"
순간 많은 생각이 오갔다.
"네."
바닥이 더러운 줄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바닥을 닦기가 싫었기 때문에 그렇게 답했다.
선생님은, 계속 바닥 닦으실 분은 닦으시고 다 닦으신 분은 매트에 앉아 교호 호흡을 시작하겠다고, 나름대로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했다. 어르신들은 깔깔 웃었고 난 그 웃음이 어쩐지 미웠다.
어찌어찌 요가 시간이 끝났고 매트를 정리하고 잠바를 입으려는 참이었다. 한 어르신이 내 옆을 지나가며 예쁘다, 좋을 때다, 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얼른 이어폰을 꽂고 듣던 팟캐스트를 틀었다. 그걸 들으며 걷는데 내용이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물음을 가장해서 뭔가를 시키려 하는 것(물론 내 마음이 배배 꼬여서 그렇게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혹은 예뻐하는 것, 귀여워하는 것이 폭력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그러다 생각이 흘러 흘러 내가 껴안았던 '2학년'에게까지 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