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넌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냐고 자신감을 가지라는 소릴 수도 없이 들어 왔다. 사람들은 자신감을 가지란 말을 교묘하게 바꿔 말하곤 했다. 그건, 어깨를 펴고 다녀라, 땅을 보고 걷지 마라, 같은 말이었다.
나는 그런 말들이 싫었다. 자신감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그게 없다는 말이 왠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세상 사람을 자신감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면 나는 후자에 속할 게 분명했다.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런 말을 해 오곤 했으니까.
대학생 시절, 같은 과 여러 학년이 모여 과제 같은 걸 하러 며칠 같이 다닌 적이 있다. 그때 일인데, 평소 이야기 한 번 나눠 보지 않았던 선배가 나를 보더니 다짜고짜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했다.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감사하다고 웃었는데, 돌아서서는 가슴이 답답해졌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 선배는 세상을 떠났다. 사고라고 들었지만, 단순한 사고가 아니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선배의 부고는 건너 듣게 됐는데 장례식장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었다. 그날, 선배가 했던 말은 수정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썼고 그런 것들로 내가 규정될 거라고 여겼다. 돌아보니 그렇다.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님이 실망하시진 않을까 걱정했다. 내가 한 말을 친구가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했다. 내 목소리가 남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곱씹었다.
기억나는 일이 몇 있다. 중학생 시절, 문학 작품 같은 걸 읽는 시간이 되면 나는 바짝 긴장했다. 선생님이 나를 시킬까 봐 두려웠다.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내 차례는 돌아왔고 나는 염소 같은 목소리로 지문을 읽어 내려 갔다. 그러다가 흐느끼면서 웃었다. 웃음이 내 방어기제라도 됐었는지 우는 게 아니고 웃고 말았다. 얼굴은 빨개졌고.
내게 시선이 집중될 때면 어김없이 염소 소리와 함께 흐느끼는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있으면 내 다음 사람이 지목됐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몇 번 더 그런 상황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흐느끼며 웃는 나를 보며 선생님과 친구들은 처음엔 같이 웃다가 결국에는 쟤는 왜 저럴까 하는 눈빛을 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된 후 그런 일이 더는 생기지 않았다. 조별 발표 과제 때는, 나는 발표 같은 건 못하겠다고 자료 조사 더 열심히 할 테니 빼달라고 사정했다. 조용히 학교에 다녔고 조용히 졸업했다. 그리고 조용히 취업 공부를 하다가 조용히 취직을 했다. 조용히 퇴사했으며 조용히 읽고 쓰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또 흐느끼며 웃었다. 요가를 하던 중이었다. 바닥에 엎드려 양팔을 뒤로 해 양 발목을 잡아 팔과 발을 점점 위로 올리는 활체위를 하고 있었다.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선생님이 변형 동작을 해 보자고 했다. 변형 동작은 활체위를 하면서 오뚝이처럼 몸의 중심을 앞쪽에 뒀다가 뒤쪽에 뒀다가 하는 것이었다. 힘차게 굴러 가며 동작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단상에서 내려오는 게 보였다. 수강생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선생님을 보고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다행히 염소 소리 같은 건 없었지만, 웃다가 동작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렇게 웃는 게 힘들지 않았다. 흐느끼며 웃었다는 말 대신 웃어젖혔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릴 법했다.
처음으로 오직 내 의지로 하루의 시간을 쓰고 있다. 요가 하러 갔다가 돌아와 늦은 아침 혹은 점심을 먹고 책 읽는다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그러다가 뭘 만들어 먹겠다고 왔다 갔다 하고. 스팀잇에 들어왔다가 글을 쓰기도 하고.
꼭 내가, 내가 바라는 누군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슬며시 내가 좋아질 것 같기도 한 요즘이다. 그렇게 숨고 싶어 하던, 남들 앞에 조그만 것 하나 드러내는 걸 두려워했던 내가 스팀잇에 글을 올리고 있다. 그것도 꽤 내밀한 이야기를. 물론 올리는 글엔 내 이름도 얼굴도 나타나지 않지만, 내 계정의 이름 또한 내 이름 중 하나 일 것이다.
내게 없는 것이 자신감 하나뿐이겠나. 많은 걸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게 나라는 걸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걸 사람들은 자신감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전에서는 '자신감'을 '자신이 있다는 느낌'으로 정의한다. 이때 '자신'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걸 말할 테지만, 나는 '내가 있다는 느낌'으로 바꿔 읽어 보려고 한다.
내가 있다.
내가 있다는 느낌이 아주 오래전 봉인된 그 말을 다시 바꿔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