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냄새로 기억되는 곳이 있다.
며칠 전 아파트 어귀를 걸어가던 중이었다.
아파트 앞의 인도에는 가로수들이 늘어서있는데 바람결인지 나무의 향이 났다.
순간 어디선가 이 향을 맡았던 생각이 났다.
순식간에 내 기억은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우리가 묵었던 호텔 근처의 어디쯤으로 가있었다.
딱히 어디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곳, 그냥 호텔을 오가면서 혹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지나쳤던 곳들이었다.
나무냄새와 함께 마음도 동시에 그때 그 여행지로 이동했다.
함께 걸어가던 엄마에게 물었다.
"지금 꼭 캄보디아에서 났던 냄새같은 거 나지 않아?"
"너도 그러니? 나도 지금 그 생각했는데"
엄마의 대답이 막연했던 기억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
이제 나무냄새와 함께 우리의 마음이 동시에 그때 그 여행지로 이동했다.
몇년 전 이맘때 가족과 함께 캄보디아로 여행을 갔었다.
당시 보름 넘는 기간 동안 우리는 시엠립과 프놈펜을 갔었다.
유적지는 어차피 전문가가 아닌 이상 몇 개만 보면 그게 그거라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고 가족 모두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날그날 가고 싶은 곳만 가거나 아니면 그냥 단순히 동네구경만 하면서 보내기도 했었다.
그래도 유명한 유적지를 전혀 가보지 않는다는 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릴 것 같아 나름대로 몇 군데 돌아다녔는데 지나고 보면 사실 그런 것들은 그냥 어디를 가봤다는 정도에 불과할 뿐 크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의미는 없는 거 같다.
앙코르와트에서 기억에 남는 건 웅장하고 신비로운 돌탑의 자태보다는 오히려 너무 더워서 얼굴이 사우나에 들어가있는 것처럼 후끈거렸다는 것, 아빠가 혼자서 한적한 돌탑 높은 곳에 올라가시곤 내려오려니 은근히 겁이 나셨던 건지 우리에게 전화로 SOS를 쳤던 일 등이다.
동네 가로수의 나무 이름은 모른다.
평소에 관심도 없었다.
시엠립의 거리에 있던 나무의 이름도 알지 못한다.
그 때에도 나무이름 같은 건 관심이 없었다.
기억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은연중에 온몸에 배어드는 것이라 그런가 보다.
관심도 없던 나무의 냄새처럼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다가 갑자기 예상치 못한 때에 불쑥 솟아나는 것.
그래서 의도치 않은 기억들은 어떨 땐 두렵고 어떨 땐 행복하게 해준다.
몇 해가 지나고 난 어느 순간 그 때의 그 나무냄새와 같은 냄새를 맡게 되고 시엠립 거리의 기억을 마주하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