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나는 다이어리를 사곤 했다.
사실 요즘에는 예전처럼 다이어리를 따로 사서 쓰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거 같다.
구글이나 네이버 캘린더처럼 편리한 것들이 널려있는데 부피나 무게도 있고 일일이 손글씨로 적어야 하는 수첩식 다이어리는 이제 너무 구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여전히 수첩식 다이어리가 좋다.
뭐니뭐니해도 다이어리의 첫 장을 넘길 때의 기분이 가장 좋고, 특별히 공책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게 된 후부터는 손글씨로 적어가면서 공책에 뭔가를 쓰는 느낌을 되살려주는 건 다이어리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연말이면 마트에 가서 일부러 다이어리 코너를 돌아보는데 이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나만의 연말연시 행사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내가 사는 다이어리는 늘 사이즈나 스타일이 비슷하다.
너무 크지 않고 너무 두껍지도 않으면서 겉지는 항상 심플한 스타일을 고른다.
속지는 모든 다이어리의 표준 정도 되는 것으로 고르는 편인데 종이의 질도 만져보고 나름 세심하게 선택을 한다.
그리고 다이어리에 처음 글씨를 쓰는 순간,
그 순간 만큼은 항상 처음이라는 말 그 자체의 느낌에 걸맞게 항상 긴장이 된다.
늘 쓰는 글씨임에도 크기도 제대로 맞추고 싶고 더 예쁘게 쓰고 싶다.
대체로 다이어리라는 것은 연말에 미리 사는 것이다 보니 거의 12월 달력은 남아있는 편이다.
그래서 일단 12월 달력의 작은 칸에 며칠 안 남은 날의 일정을 쓸 때도 있지만 웬만해서는 비워놓는 편이다.
1월 첫날부터 쓰기 위해서.
그리곤 1월이 되기까지 난 베개 옆에 다이어리를 놓고 잔다.
거의 다이어리를 처음 사면 늘 그러는 것 같다.
이제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마음가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난 늘 다이어리를 일년 내내 써본 적이 없다.
처음 며칠은 나름대로 열심히 일정도 적고 계획도 적어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난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평소에 뭔가를 쓰면서 정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다이어리는 처음 며칠만 가지고 다닐 뿐 어느새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보통 내가 다이어리를 산 후 며칠이나 썼을까.
아마 열흘? 길게 잡아야 한 보름?
결국 다이어리는 베개 옆에서도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다.
새해 다짐이 온데간데 없어지듯이 다이어리도 어느새 구석진 자리만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쌓인 다이어리가 몇 개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내가 다이어리를 사용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올해는 큰 맘 먹고 다이어리를 사지 않았다.
초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