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가 떨어졌다.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개 정도를 정리한 소재가 떨어졌다. 찍어 놓은 사람은 있는데 어디까지를 쓰고 말지를 정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당연히 소재 자체는 떨어지지 않는다. 구악은 멸종되지 않으니까. 비공개 글이라면 당장 쓸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이 순간 너댓은 스쳐 지나간다.
오늘 당장 쓸 사람이 없고, 무지하게 글은 쓰고 싶어서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D군이다. 한 기업의 홍보팀 직원이다. D 역시 보호 받아야 하기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나는 카톡을 보냈다.
shiho : 니가 겪은 구악진상기자의 갑질 스토리를 좀 얘기해바봐
D : 에잉 나는 많지 않은데... 반말. 골프공 가져와라. 야 골프공 6박스만 도청기자실로 가져와
그렇다. 또 도청이다. 이놈의 지방기자들. 찌질하게 골프공 하나 제 돈으로 사서 쓰지 않는다. D에게 물어 본 결과 해당 기자는 서울에 본사를 둔 중앙지의 주재기자다.
shiho : S신문 아님? ㅋㅋㅋㅋ
D : 아냐 ㅋㅋㅋㅋㅋ
D : 노골적 성접대 요구
D : 거기까지 가는데 좋은데 가나?
D : "요즘 저희가"
D : 그럼 거길 뭐하러 내가 가
여기까지 듣고는 궁금해졌다. 아직도 저러고 다니는 XX들이 있는지. 김영란법이 시행 중인데도 말이다.
D : 흠 아무래도.. 골프나 성적으로 덜해진 듯.
shiho : 그 전엔 성접대가 많았나보군.
D : OO이 많았지
shiho : OO ㅋㅋㅋㅋ 그 넘이 그 넘이겠구만
D : 워낙 그 쪽으로 유명한 도시니
shiho : 아 그래?
지방에 근무했던 D의 말에 따르면 지역에 있으면 지방기자들 뿐 아니라 서울에서 출장을 오는 기자들도 똑같다고 한다. 그래도 김영란법 시행 뒤, 내가 생각하는 2대 거악인 골프와 성접대가 덜해졌다니 다행인건가.
이 쯤 되자 그는 내게 물었다. "영란법 1년이라도 쓰나?" 나는 일단 개인적으로 글 쓰는 데가 있다고 하고 나중에 스팀잇을 소개했다.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고 하니 좀 더 도움을 주고 싶었는지, D는 "유통 쪽이 심하다던데"라고 운을 띄웠다. 역시 내가 알고 있던대로였다.
그가 유통 쪽에 있는 직원들에게서 듣고 해 준 말에 따르면 결혼을 앞둔 한 기자는 백화점 홍보팀 직원에게 전화를 해서 "아래 트렁크 열어 놨으니 채우라"고 말했다. 결혼을 앞뒀다니 젊은 기자다. 어린 놈이 못된 것만 어디서 배웠을까. 이제 구악이 더 이상 구악이 아니다. 하는 짓은 구악이지만 하는 놈은 구세대가 아니다.
술 먹고 집에 갈 때 "택시비도 안 주는데 나는 어떻게 가느냐"고 한 놈도 있다고 한다. 무슨 거지냐?
또 있다. 보도자료 쓰는 직원에게도 갑질에 하대를 한다는 얘기다. 보도자료에 오타가 있다고 "ㅂㅅ처럼 이렇게 보도자료를 쓰면 내가 고치냐"고 한 뒤 그 상사에게 전화해서 "밑에 직원 교육 좀 똑바로 시키라"고 했다고 한다. 이건 먼저 기자라는 놈이 평소 보도자료를 그대로 긁어서 기사를 내보낸다는 얘기다. 열심히 하는 기자들은 보도자료가 나와도 그 안에서 문제점을 찾아서 다른 각도로 기사를 쓰기도 한다. 해당 기자라는 작자는 보도자료를 토씨 하나 안 고치고 그냥 내보내려는데 오타가 있어서 짜증난다는 거다.
특히 D군이 마지막에 얘기해 준 사례는 정말 충격적이다.
D : 물먹은 담날
D : 홍보를 불러 "(무릎꿇으라 한 뒤) 난 기자로도 안보이나보지?"
'물을 먹다'라는 건 출입처에서 다른 회사 기자가 단독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인 즉슨 저 기자라는 사람은 열심히 취재한 다른 기자에게 물을 먹어 놓고 그 기사 취재에 도움을 줬을지 모르는 홍보팀 직원을 불러 무릎을 꿇렸다는 것. 보통 기업 출입하면서 단독하면 어차피 그 회사가 출처가 되니 애꿎은 홍보팀에게 자기한텐 단독거리 안 주고 남한테만 줬다고 ㅈㄹ을 한 것이다.
정말 같은 기자로서 독자 여러분께 대신 사과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