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려 양말을 꺼내다 옷장문짝 끝부분에 긁혀 무릎위에 생채기가 났다.
응급요법으로 혓바닥으로 침을 발라주었다.
냥이도 아닌데 그루밍 하냐 했지만
이렇게라도 해줘야 한다는 반응이 본능처럼 나왔을 뿐이다.
출근하려면 지하철로 한 시간은 족히 이동해야한다.
다행히 종점이라 환승하기 전까지 대부분 앉아간다.
그런데 오늘은
무릎위 생채기 덕분에 가방을 놓으면 자꾸만 따끔거리니 불편해서 일어서게 되었다.
으레 지하철에서 코박고 핸드폰으로 내 일 하는게 일상이었던지라 몰랐는데
일어나니 할머니께서 '난 괜찮다'고 말하시는거다.
'아! 이 할머니가 내 앞에 서게셨구나'
'내가 당신 때문에 일어섰다고 생각하시는구나'
'그게 아닌데 '
'단지 내가 불편해서였었는데'
나와 자리를 바꿔앉게되신 할머니께서는 젊은이 고맙다며 인사를 하셨다.
(상대적이겠지만.. 흰머리가 검은머리보다 많은 젊은이가 되었다 올레~^^)
자리에 앉으신 할머니께서 부득불 내 가방을 들어주시겠다 하셨고
가방이 볼모로 바뀌는 바람에 할머니 앞에 서가는 수밖에.
얘기가 여기까지만 갔으면 해피했을텐데..
그때부터 할머니의 요새 젊은 것들에 대한 논평이 시작되었다.
나이먹은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른다.
지 엄마나 할머니가 와도 그럴거다 등등
개인적으로 나보다 더 나이 많은 분들께
나름의 예를 차리는 편이라 생각하는 나도 계속 듣고 있는게 거북했다.
물론 나 또한 잔소리 삼매경에 빠졌을 그 순간 만큼은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꼰대 그 이상 이하도 아닐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점점 시대가 바뀌어감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 내가 예전에 보고배웠던 것들이
현재 지금의 시점에 당연시 될 수 없음은
시대의 주역인 세대들에게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물론..
내가 은퇴하고 지금보다 점점 더 수구세력으로 변해버리게 되면
지금 쓰고있는 내 생각에 '그땐 어렸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생각은 그렇다.
나는 내가 맞다고 우기는 편이 아니다.
세상살이를 그리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경험했던 내 경험에 기초하여 생각해보면
내가 100% 맞는 경우는 100% 없었다.
왜냐구?
그랬다면 내 인생에 후회할 일 하나 없이
선택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도 내가 생각한 이 법칙에서 100% 벗어나지 못한다고 철썩같이 믿고있다.
[점점 모순(矛盾)
의 창과 방패 이야기가 되어간다 역시 글은 길면 안 돼 ㅠㅠ]
우린 사람이기에 때로는 사람을 돕기도 때로는 사람을 괴롭히고 싶어지기도 한다.
(흑화 되었다가 백화 되었다 함은 나도 똑같으니까)
오늘의 내 선택이 반드시 맞는것이 아니란 당연한 사실을
시간이 지나서야 깨우치게 되는게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내 행동이 과연 최선인가?' 라는 생각을
한번 더 하고 행동해야
후회의 결과와 그로인해 되돌림에 수반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나보다.

아침에 생채기에 혓바닥 침바름을 선택한 나는
왜 약 바르고 밴드 붙이지 않고 냥이처럼 그루밍만 했는지
지금도 깝깝하다. (앗 따가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