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즈화는 스탈린이 조선을 소련의 위성국가로 삼지 않으려고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션즈화가 소련이 북한에 직접적인 간섭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으로 김일성 즉 북한의 역하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즉 한국전쟁은 소련과 중국의 사주에 의해 김일성이 괴뢰가 되어 일으킨 것이 아니라 김일성의 판단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션즈화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74-75)
“스탈린은 조선의 전체 또는 북쪽에 동유럽 같은 위성국을 수립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라서 소련은 우선 미-소양국이 조선에서 동시에 철수할 것을 제안하고, 소련 정령군이 주도적으로 소련에서 철수하며 동시에 조선인들에게 충분한 자치권을 줄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소련이 조선에 부여하기로 한 자치권의 정도는 그들이 동유럽 일부 국가에 부여한 자치권보다 훨씬 광범위한 것이었다.”
김일성의 독자적 영역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건국후 김일성이 먼저 생각한 것은 소련과 동맹을 맺어 조선을 통일시키는 과정에서 조선의 지위와 영향려글 강화하는 것이었다 ” (75)
션즈화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들이다. 어떤 겨우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할 정도다.
북한이 한국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1949년 3월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해서 소련과 경제문화 협정을 체결했으며 그 당시 체결한 협정의 내용이 상당부분 군사적인 지원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1949년 3월 소련과 북한사이에 군사적 문제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것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
션즈화는 소련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949년 초까지, 소련은 초기에 신탁통치에 찬성했고, 후일 통일된 조선정부 설립에 지지했으며, 최후에 조선에서 단독정부의 설립을 승인하는 것까지 조선정책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 기본 목표는 시종일관 소련이 조선반도의 상황을 일정 정도 통제하면서 미국과의 직접충돌을 피하고, 동시에 미국을 자극해서 미국이 지나치게 강경한 정책을 취하게 되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었다”(77)
그러나 션즈화의 이런 주장은 이후 한국전쟁과정에서 스탈린이 미국을 전쟁에 참가하도록 하기 위해 유엔안보리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하는 고트발트에게 보낸 서신의 의미와 서로 상반된다.
오히려 스탈린은 얄타회담에서 정해진 한반도를 자신의 영향력하에 두려고 했고 이를 위해서 중국과 미국을 전쟁에 들어가게 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스탈린은 중국과 중소조약을 체결하면서 중국 공산당이 자신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위성국이 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스탈린이 중국을 한국전에 끌어들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스탈린은 중국과 미국의 힘을 소진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봉쇄당하다시피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스탈린은 중국과 미국을 서로 싸우게 하기 위한 술책으로 한국전쟁을 이용했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스탈린의 입장에서는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승리하면 얄타회담의 결과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이익이고, 패배하더라도 중국을 개입시켜 중국과 미국이 적대관계에 들어가도록 만들 수 있어서 이익이었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중국을 약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중국을 전쟁에 끌어 들이는 것이었다. 중국은 북한이 패배해서 미국과 일본이 다시 한반도에 진출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전쟁은 이념적 틀을 쓴 냉전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극히 세력정치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에 관해서는
미국이 북한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입장
내전이라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스탈린의 입장에서 전략적인 이해관계의 결과라는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게 보면 션즈화가 언급한 동북지역에서 중국이 소련의 요구를 축출한 것이 소련이 한국전쟁을 생각하게 된 이유가 되었는지 모른다.
올린이:admin2019년 1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