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을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다.
션즈화 처럼 소련이 중국에서 상실한 구러시아제국의 권리를 한반도에서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발생했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두번째는 소련이 유럽의 사회주의세력을 결집시키고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미국을 한반도에 끌어들이려고 했다는 관점이 가능하다. 이것은 스탈린이 고트발트에게 보낸 전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두번째 관점에 추가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소련이 미국을 한반도에 참전하게 하고 중공을 미국과 전쟁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미국과 중국 모두가 서로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세기의 관점이다.
세번째는 미국이 한국전쟁을 일으키도록 유도했다는 관점이다. 웨드마이어 장군의 관점이다. 웨드마이어는 미국이 유럽에 집중하기위해 한국에 전쟁을 일으켰다는 식으로 한국전쟁의 성격을 규정했다.
어떻게 보든 한국전쟁은 미국과 소련이 전세를 놓고 서로 자웅을 겨누는 상황에서 발생한 전쟁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지금처럼 한국전쟁을 내전이니 국제전이니 하는 접근방식, 혹은 남침이니 북침이니 하는 방식으로 보는 관점으로는 한국전쟁의 성격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냉전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많지만 션즈화는 소련과 미국의 충돌이 유럽에서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1948년 6월부터 1949년 5월 사이에 냉전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션즈화는 베를린 봉쇄를 냉전의 기원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당연히 베를린 봉쇄로 미국과 소련이 충돌하는 상황이었다면 스탈린은 지구의 또다른 반대편에서 미국에 대응하기 위한 시도를 했을 것이다.
소련이 미국에 맞설 수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면 이란과 한반도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베를린 봉쇄와 함께 소련은 미국이 다음 행동을 할 수도 있는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준비를 했을 것이다.
베를린 봉쇄는 결과적으로 소련의 굴복으로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스탈린이 이런 굴복을 갚으려고 생각했던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만일 소련이 유럽에서의 굴복을 만회하여 한반도를 소련의 영향권하에 두고 만일 미국이 참전하면 그 기회에 중국 공군이 참전하도록 유도하여 미중간 적대관계를 만들면 소련으로서는 금상첨화일 수 있었던 것이다.
스탈린이 중공을 신뢰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2월 24일